소소한 일상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maverick8000 2023. 11. 28. 16:18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라는 드라마를 봤습니다.

예전에 제가 정신병원에서 3년 정도 근무한 경험이 있어서 관심있게 그리고 흥미롭게

드라마를 시청했습니다.

음~ 제가 근무했던 곳은 지방(춘천시)의 정신병원이고, 드라마의 배경은 대학병원 내의 정신병동이어서

근무 환경이나 규모, 환자 수준 등 다른 점이 많았어요. 그리고 대중이 보는 드라마의 특성 상

더욱 노골적인 표현이 어려웠던 점을 감안한다면 대체적인 맥락은 어느 정도 부합한다고 보여집니다.

제가 근무했던 시점은 2012~2014년 만 3년간이고, 장소는 지방이긴 하지만 제법 규모가 있는 

정신병원이었던 점을 고려하시고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병원은 병상 100침상 이상 규모를 일컫고, 그 이하급은 의원이라 칭함)

 

단일 병동으로 운영되는 곳도 있겠지만, 제가 근무한 병원은 제1병동, 제2병동, 여자병동으로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병원은 개방병동과 폐쇄병동으로 구분되는 곳도 있어요. 병원마다 다양합니다)

정신병원의 특이한 점을 알아 볼까요..

병원 근무자는 당연히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의 인력들이 있겠지요. 물론 간호과를 예로 한 것이고

다른 여러 부서가 있으나 그곳까지 얘기하자면 너무 장황해지니까 간호과만 말씀드리지요.

여기에 추가해서 근무하는 남자인력이 있는데 바로 "생활보호사"라는 생소한 직책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위로는 치료인력(의사,간호사,조무사)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고, 환자들의 일상 생활을

보조, 지도, 감독하는 역할을 합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정신병원 내의 최하위 직급이고, 환자의 모든 것을 

수발들고, 3교대 근무의 열악한 조건하에서도 당시 월 120만원을 받는 그야말로 최악의 직업이었습니다.

드라마에서처럼 대학병원 내에 있는 그런 근무 환경이 아니라서요, 근무 투입해서 옷 갈아 입을 탈의실이 없어서

건물 옥상 계단참에서 환복하는 그 정도 수준과 대우의 직업군입니다.

 

아~ 생활보호사(이하 '생보사') 얘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간호사 얘기도 잠깐 할까요. 정신병원 간호사는 일반병원과 달리 정신건강 간호사 과정을 수련해야 상위 직급으로

승진할 수 있어요. 간호사 계급(?)은 간호부장 - 간호과장- 수간호사 (병동 간호사의 대장님) - 차지 간호사

(수간호사 다음의 권력자) - 일반 간호사로 나뉩니다.

간호조무사는 나이가 많건 적건, 초짜든 오래 근무했던간에 무조건 간호사 아래 직급입니다.

간호사는 3~4년 정규 대학과정을 마치고 국가고시를 합격해야 주어지는 "면허증"이 있지만, 간호조무사는

학원 잠깐 다니고 실습하면 나오는 자격증이기 때문에 이에 따른 차별이 상당합니다.

(저도 간호조무사/요양보호사 자격이 있기 때문에 조무사들을 비하하고 싶은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암튼 간호사는 그렇게 분류가 되고요, 물론 병원의 댓빵은 병원장과 의사들이죠..

병원장은 실제 병원의 오너일 수도 있고 바지사장인 경우도 있으나 암튼 병원의 총괄책임자이지요.

정신과는 대부분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의사들이 주를 이루는데, 간혹 젊은 의사가 한 명 들어오면

간호사들에게 인기 짱입니다. 그러나 드라마처럼 간호사와 로맨스로 연결되는 경우는 없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알 수 없는게 남녀상열지사라 혹 수도권의 병원이고 총각 의사라면 또 모를 일이지만.....)

 

다음은, 병원 시설과 관련한 특이 점입니다.

우선 정신병원 내에는 유리로 된 거울이 없어요. 목욕탕과 화장실 거울 모두 스테인리스 판입니다.

즉, 모든 위험물은 아예 설치도 안되고 반입도 안되는 것이지요.

출입문도 우리가 쓰는 일반문과는 반대로 안에서 나가는 방향으로 락이 걸려 있습니다.

우발 상황에서 환자가 임의로 탈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또 화장실 칸막이도 사람 키 높이를 넘지 않습니다. 옆 칸에서 다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자해행위 등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 보호가 인권을 앞서는 조치라고 보시면 됩니다.

식사할 때 식사도구는 앞부분이 포크처럼 생긴 숫가락 하나입니다. 그것도 식사 후에는 반드시 반납해야 합니다.

그래서 식사 후에는 숫가락 숫자를 카운트하고 모자라면 환자들을 넓은 공간에 모두 모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병동 내부의 환자 사물함을 수색하여 숨겨 둔 숫가락을 찾아 냅니다.

이런거 상습적으로 숨기다 발견되면 반드시 의사의 약 처방이 강해지거나 생보사들의 보복(?) 조치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현명한 알콜리즘(알콜 중독) 환자들은 이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보시면 꼭 교도소 같다는 생각이 드시지요? 빙고!!!! 맞습니다. 거의 교도소 체계입니다.

거기 입원한 환자들의 상당수, 정확히는 알콜리즘 환자의 대부분이 학교(교도소)를 체험하신 분들입니다.

그래서 온 몸 여기저기에 문신한 까두기들, 심지어 사형수에서 감형받고 있다가 입원한 조폭도 있습니다.

 

위험물 반입 금지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하지요.

환자도 사람이니까 외출 또는 외박이 있습니다. 그것도 의사 말 잘 듣고 착하게 있어야 나갈 수 있지만..

암튼 이 양반들이 병원 밖 나갔다가 곱게 들어오면 좋은데 병원에 들어와서도 술을 먹고 싶은 생각에

잔머리를 씁니다. 플라스틱병 사이다를 사서 다 쏟아 버리고 거기에 소주를 채워서 들어 옵니다.

이게 걸리니까 더 진화해서 병뚜껑에다 순간접착제를 살짝살짝 바르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아주 새 것처럼

위장하는 방법을 씁니다. 외출,외박에서 돌아 온 환자의 몸과 소지품을 검사하다보면 이런 것이 자주

발견됩니다. 그 외에도 라이터를 비닐봉지에 싸서 고추장 내용물 안에 넣어서 가져 오기도 하지요.

경력이 많은 생보사에겐 이런 잔재주가 통할리가 없지요. 그래서 압수 당하고 나면 초짜 환자들은 소리소리 지르고

발광하다가 독방에 갇히고, 거기서도 문 걷어차고 난동을 부리면 철침대에 팔과 다리를 묶이는 신세가 됩니다.

그래서 노련한(?) 환자들은 순순히 웃으면서 압수 당하고 쉽게 체념합니다.

이외에도 뼈있는 치킨 반입 안되고, 찹살떡도 목에 걸릴까봐 안됩니다. 과일도 복숭아처럼 씨가 큰 것은 안되고,

허리띠(벨트)와 끈이 있는 운동복 등도 안됩니다.

담배는 어떨까요. 의사가 허용한 환자는 흡연실에서 언제나 자유롭게 피우지만 라이터는 반드시 흡연실에 매달린

것만 이용 가능합니다. 개인소지는 놉!!! 

의사가 허용하지 않은 환자, 즉 충동 억제가 안되는 환자는 2시간 혹은 기타 정해진 시간에만 한개피씩 피울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이 양반들은 담배 한 갑을 순식간에 다 피우고 남이 버린 꽁초를 줍습니다.

심지어 담배 끝 필터가 다 탈 때까지 피워서 손가락이 시커멓게 되는 경우도 있어서 입니다.

이렇게 담배를 통제하는 것을 병원에서는 "시간제 담배"라고 한답니다.

 

또 생각나는 것은 투약에 관한 것입니다.

환자들이 제 시간에 약을 먹게 하기 위해 정신병원은 일정한 시간에 "투약시간"이 있습니다.

이때는 모든 환자들이 넓은 공간에 모이고, 간호사는 약을 준비하고 생보사는 물병과 컵을 들고 서서 환자에게

약을 지급하고 먹는 것을 확인합니다. 일반 병원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요.

간호사는 환자 이름을 호명하고 나온 환자의 얼굴을 확이한 후 약을 줍니다. 환자가 약을 입에 넣고 물을 마시면

생보사는 환자의 입을 벌리게 하고 삼켰는지 확인합니다.

이런 절차를 확실히 하지 않으면 엉뚱한 약을 지급할 수도 있고 (투약 사고), 환자가 먹는 척하면서

손가락 사이에 숨기거나 혀 밑에 숨겨 두었다가 가면서 뱉어 환장실에 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신과 약이라는 것이 대체적으로 뇌를 쉬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좋게 얘기하면 사람을 평안하게

또 온순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환자들 입장에서는 무기력 해지고 잠이 쏟아져 싫어 하는 것이지요.

특히 알콜리즘 환자들은 입원할 때는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지만 술 깨고 며칠 지나면 거의 정상 상태로 되거든요.

물론 심한 중독증 환자는 손도 떨고 망상, 환청같은 불안 증세도 있지만요.

그러니 이 사람들이 곱게 약을 받아 먹을리가 없지요. 자기가 지극히 정상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투약하는 자체도 사실 보통 일은 아닙니다. 환자 수가 많아서 정신없이 약을 주다보면 투약사고도

빈번하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기 때문이지요.

 

병동 안에는 국가인권보호센터와 지역 보건소 등에서 설치한 건의함(?)이 비치되어 있어요.

이게 뭐 옛날에 군대 내무반에 설치된 소원수리함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형식적인 것 같지만

뜻밖에도 환자들이 애용하기도 합니다.

하루는 인권위에서 와서 건의함을 열었는데.. 거기엔 다음과 같이 단호하고 명료하고 적혀 있었습니다..

"OOO(필자 이름) 구속!!!"

인권위 직원이 그 환자를 불러 이유를 물었습니다.

"OOO(필자 이름) 이 새끼가 내 시간제 담배를 안준다"가 이유였습니다. 그 환자가 중독증이 심하여

자다가 침구에다 그냥 소변을 보는 이상 증상이 심해져서 의사의 담배 지급 중지 지시가 있었거든요..

암튼 다행히도 제가 구속은 안되었습니다.. ^^

 

쓰다가 보니 이야기가 한이 없네요..

갖가지 여러 질환을 가진 환자들을 케어하면서 간호사나 조무사는 성추행도 당하고, 간호사 내부에서도

갈등도 있고, 간호사와 조무사 간에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또 간호과와 기타 부서 (원무과, 관리과, 방사선과, 약국 등)와의 갈등 그리고 각 병동 수간호사들 간의 알력 등등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참 다사다난했던 경험이었습니다.

환자를 입원시킨 보호자가 10년이 넘도록 면회 한번 오지 않는 사례도 있었고,

퇴원시킨다고 환자 아버지를 속인 아들이 병원 입구의 막국수집에서 식사하면서 소주 2병을 먹게 하고

곧바로 다시 입원시키는 사례도 보았습니다.

원인은 모르지만 환자가 죽었는데도 보호자는 병원에 나타나지도 않고 서둘러 장례식장부터 잡아서

화장하는 보호자도 있었습니다.

술 취한 알콜환자에게 폭행 당하기 일쑤인 생보사들.. 그러다보니 환자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하는 현실적 고충..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 만큼도 케어 받지 못하고 독방에서 기저귀 하나만 차고 사육 당하고 있는

자폐증 환자들... 지금도 눈 앞에 선합니다.

 

저는 3년간의 병원 생활을 정리하고 이후 요양보호사로 조금 더 근무하다가 지금은 직종을 바꿨습니다만

그 기간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직장 동료들의 면면과 당시 환자들의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그 시절의 모든 기억이 상당 부분 잊혀져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당시의 병원은 정말 모순 투성이의 집단이었기 때문이지요.

지금은 그 병원의 시스템과 치료진들에 대한 근무환경, 사회적 약자인 환자들.. 특히 의사표현이 불가한

자폐환자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었길 바라며 두서없는 글을 마칩니다.

 

아~ 드라마는 환자들이 나아서 퇴원도 하고, 치료진과 환자 간에 갈등도 있지만 해결점도 찾고

여러가지 훈훈한 전개가 있던데....

제가 쓴 글은 두서도 없지만 참 거시기 하네요......... 씁쓸하네요..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