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과 사랑

누에 / 나희덕

maverick8000 2024. 5. 20. 08:06

 

 

 

누에

 

 

세 자매가 손을 잡고 걸어온다

 

이제 보니 자매가 아니다

꼽추인 어미를 가운데 두고

두 딸은 키가 훌쩍 크다

어미는 얼마나 작은지 누에 같다

제 몸의 이천 배나 되는 실을

뽑아낸다는 누에,

저 등에 짊어진 혹에서

비단실 두 가닥 풀려나온 걸까

비단실 두 가닥이

이제 빈 누에고치를 감싸고 있다

 

그 비단실에

내 몸도 휘감겨 따라가면서

나는 만삭의 배를 가만히 쓸어안는다

 

- 나희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