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을 찍을 때마다
4년 전 전남 곡성으로 집필실을 옮길 땐, ‘거시기’란 단어를 많이 접할 줄 알았다.
그러나 마을에서 살며 농사를 배우는 동안, 거의 매일 듣고 말하는 단어는 ‘긍께’다.
‘긍께’는 상대의 말을 일단 품을 때 쓴다. 그 말이 싫든 좋든, 부족하든 넘치든, 옳든 그르든,
그 말을 하는 당신의 형편이나 마음은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반대부터 선명하게 밝히는 방식이나 날카로운 질문을 연달아 던지는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지금도 그렇지만 섬진강을 이웃하며 살기 시작할 땐 모든 일에 서툴렀다.
특히 논이나 밭에선 호미나 괭이를 드는 자세도, 봄 들판에 지천으로 자라는 풀들에 대한
지식도, 병든 농작물을 돌보는 법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힘겨워할 때면, 마을사람들이 슬그머니 다가와선 몇마디 충고를 했다.
그 충고까지 알아듣지 못한 채, 답답하고 막막한 마음을 툭툭 내놓으면, 대부분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곤 짧게 답했다. “긍께!”
‘긍께’란 말이 들려오면 걱정이 옅어지며 마음이 놓였다.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겠단 느낌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까지 내가 몰랐던 지식들, 오래 농사를 지으며 터득한 기술들과 함께,
하늘을 10분만 올려다보라거나 강둑이나 논둑을 한시간 걷고 오라는 지혜로운 권유까지 이어졌다.
나는 아무런 의심 없이 그들의 말을 따랐다.
더 힘들고 나빠진 적은 한번도 없었고 대부분 훨씬 편하고 좋아졌다.
언제부턴가 나도 ‘긍께’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진지한 인생 상담이든 실없는 농담이든,
듣고 나면 ‘긍께’란 말부터 나왔다. 당신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는 맞장구면서, 함께 그 문제를
풀어보자는 뜻을 내비치는 것이다.
늦은 밤 혼자 글을 쓸 때나 이른 새벽 밭에서 일할 때도 ‘긍께’란 말을 하게 됐다.
입을 나온 말이 귀로 곧장 들어왔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가 나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응원이었다.
작가로 살다 보니, 독자가 건네는 책에 사인할 때가 종종 있다. 따로 사인을 만들진 않았고,
내 이름을 또박또박 쓰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가을과 함께 ‘긍께’라고 새긴 도장을 파서 원하는
이들에게 찍어주고 싶어졌다.
책을 통해 작가와 독자가 교감할 때, 서로에게 건네는 가장 좋은 말 중 하나가 ‘긍께’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기운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난로에서 목공예까지 손재주 좋고 마음씨도 착한 옆 마을 농부에게서 ‘긍께’라고 예쁘게 판 도장을
선물로 받았다.
곡성에서 작은 북토크를 마친 뒤, 원하는 독자들에게 ‘긍께’ 도장을 내 이름 뒤에 찍어줬다. 웃고 또 웃었다.
힘겨운 시절이다.
긴 여름 끝에 맞은 짧은 가을은 사람에게도 동식물에게도 낯설고 어려운 문제로 가득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긍께’라고 말한 뒤, 하나하나 맞설 수밖에 없다.
스스로 힘을 내면서, 서로를 격려하면서.
김탁환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