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운동화를 물빨래하는 모임
꽤 자주 아빠 구두를 닦았던 것 같다. 효녀를 가장한 용돈벌이의 현장.
구둣솔에 깜장 구두약을 아낌없이 찍었다. 앞코가 반짝일 때까지 문댔다.
입김 호호 불고 침도 뱉었다. 오만상을 쓰면서.
그러나 구두를 닦는 목적의식을 상실하고 아무렇게나 닦았던 적이 실로 적지 않았다.
가끔은 굳이 닦을 필요 없어 보이는데도 솔을 들었다.
속이 빤히 보이는 딸내미 술수에도 아빠는 “녀석, 고생했다”며 손에 500원짜리 동전을 쥐여주곤 했다.
그때 뱉은 침이 한 바가지는 될 것이다. ‘구두닦이와 침의 상관관계’를 최근 다시 떠올릴 일이 있었다.
지난달 구두닦이 체험을 위해 광화문의 한 구둣방을 찾았다.
58년간 한자리에서 구두를 닦아 온 대가(大家)와 마주 앉아 “구두 어쩌고 침 저쩌고”를 말했다.
구둣방에서도 침으로 구두를 닦은 적이 있었지만 고릿적 얘기란다. 위생 문제 때문이다.
그는 “침으로 문지르면 오줌 튄 자국 등이 비교적 빠르게 지워지는 건 사실”이라며
“분해 효소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칭찬을 들었다. “어릴 때 똘똘했는가 보다.”
내 또래 혹은 그 위 세대에게는 구두와 관련된 추억이 하나씩은 있었다. 광(光)내기 추억.
군대에서 배웠다는 ‘물광’ ‘불광’ 이야기가 가장 많았다.
1970년대생인 한 선배는 “전역하고 20여 년이 흘렀지만 군화에 광내던 기억이 뼈에 새긴 듯
선명하다”고 했다. 1990년대생인 한 후배는 “첫 휴가 때 선임이 닦아 줬던 군화의 그 영롱한 빛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아빠 구두를 닦아본 적이 언제였는지를 떠올렸다.
구두뿐일까. 바둑을 좋아하던 아빠를 위해 어릴 땐 버려진 신문에서 기보(棋譜) 실린 면만을
쭉 찢어 집에 가져가곤 했다. 아빠는 구두든 기보든 “아빠 생각났다”는 딸 마음이 갸륵했을 것이다.
기억을 더듬었지만 성인이 된 후엔 아빠를 위해 한 일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가끔 소소한 용돈만 보내드릴 뿐이다.
아빠는 “어릴 때 하얀 고무신 한 번 신는 게 소원이었다”고 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하얀 고무신 대신 검정 고무신만을 신었단다. YS의 구두를 5년간 닦았다는
구두닦이 대가는 “이젠 구두만 보면 회사 대표인지, 갓 입사한 신입인지 안다”고 했다.
신발은 사회에서의 위치 혹은 정체성을 보여준다. 우리는 밖으로 나갈 때 신발을 신고 집에 와서야
신발을 벗는다.
아빠는 학창 시절 검정 고무신을, 청년 시절 운동화와 군화를, 직장인 시절 구두를 신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년퇴직을 한 지금은 다시 운동화로 돌아왔다.
이젠 아빠 구두를 닦고 싶어도 못 닦는다.
죄송스러운 마음에 슬쩍 초고를 아빠에게 보냈다.
아빠는 멀뚱멀뚱한 표정의 이모티콘 하나를 보내더니 “구두를 그렇게 많이 닦아줬던 것 같지도
않건만”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쿨하게 ‘운동화 물빨래’를 제안했다. 내심 기쁜 마음으로 승낙했다.
늦기 전에 ‘아빠 운동화 빨래하는 모임’에 참여할 청년을 모집한다.
물론 구두 닦는 것도 가능, 나이 제한 없음.
출처 : 조선일보 [카페 2030] 이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