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능력이 떨어지는 어른들
얼마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결과가 발표됐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일본, 독일 등 31개국이 참여한 대규모 국제 조사다. 10년마다 각 나라
성인들의 언어능력, 수리력, 적응적 문제해결능력을 측정한다.
이 역량이 떨어지면 일상 또는 직장에서 생활하는 데 크고 작은 곤란을 겪는다.
한국인들 성적은 처참했다. 언어능력(249점), 수리력(253점), 문제해결능력(238점)
모두 OECD 평균보다 10점 이상 낮은 하위권이었다. 청년층(16~34세)은 OECD 평균을 웃돌았으나,
중고령층(1958~1968년생)이 문제였다.
이들은 언어능력(217점), 수리력(226점), 문제해결능력(213점)이 다 형편없었다.
특히 언어능력은 지난 조사 결과보다 42점이나 추락했다. 단순하고 짧은 문장을 간신히 이해하는
사람(수준 1)도 이들 연령층에 몰려 있었다.
언어능력은 인간다움의 핵심이다. 인류는 언어를 통해서 타인과 소통하고, 사귀고 일하며,
공동체를 이룩하고, 사회를 유지한다. 언어능력이 떨어지면 편벽한 자가 되기 쉬워 타인과 어울려
살기 어렵다.
일찍이 호메로스는 '오뒷세이아'(민음사 펴냄)에서 말 안 통하는 자들을 외눈박이 퀴클롭스에 비유했다.
그들은 "조언 구하는 회의장도, 법규도 없이" 서로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간다.
회의도, 법규도 말의 힘에 기초해 작동하므로, 퀴클롭스는 언어의 힘을 모르고 멋대로 살아가는
존재를 뜻한다. 오뒷세우스가 대화를 시도하자, 그는 무자비한 폭력으로 응수했다.
조사에서 알 수 있듯, 젊을 때 언어능력이 평생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는 변화 속도가 빠르고 새 지식이 쏟아지기에, 이를 좇아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절로 퀴클롭스로 전락한다. 더욱이 40대 이후엔 언어능력 하락 속도가 자연히 빨라진다.
이 나이에 분별을 잃고 낡은 지식에 집착하면 말귀를 못 알아듣고 고집과 화만 늘어난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안다고 믿는 건 비판적으로 따지고, 자신이 모르는 건 해당 분야 전문가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언어능력을 유지하려면 한결같은 학습, 꾸준한 탐구, 겸손한 태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해는 전체의 관점에서 조망할 때만 가능하다. 개별 사건이나 지식을 받아들일 땐
반드시 그 맥락이나 체계도 함께 살펴야 한다.
인터넷, 소셜미디어, 유튜브 등 경박단소한 콘텐츠를 통해서만 지식을 학습하고, 자신과 비슷한
의견을 갖춘 이들과만 소통하면 언어능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독서를 멈추지 말고 꾸준히 긴 글 읽기에 힘쓸 때만 언어능력을 지킬 수 있다.
출처 : 매일경제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