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희망의 정신

maverick8000 2025. 1. 3. 10:17

 

 

불안은 희망을 빼앗긴 세계에서 창궐하는 전염병이다.

그 세계에선 사람들이 늘 쫓기는 기분에 사로잡혀 안절부절못하며 살아간다.

걱정이 찾아오고 근심이 일어서며 무력감에 빠지고 우울함이 덮쳐온다. 감옥에 갇힌 듯 가슴이

답답하고 눈앞이 컴컴하다. 가장 어둡고 끔찍한 연말을 맞은 요즘 한국 사회의 분위기다.



한병철의 '불안 사회'(다산초당 펴냄)에 따르면, 다행히 절망과 희망은 산과 계곡처럼 이어져 있다.

절망의 깊이가 희망의 높이를 규정한다. 희망은 절망 한가운데에서 그 눈을 뜬다.

사방의 짙은 어둠은 조만간 새벽이 온다는 뜻이다.

그리스인들이 희망의 정령 엘피스가 밤의 여신 닉스의 자식이라고 믿은 이유다.

 



희망은 "먼 것에서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이고, "앞으로 도래할 것,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인식하는" 힘이다. 불안이 "미래를 가로막고, 새로운 것으로 향하는 통로를 차단"한다면,

희망은 "미지로 가는 이정표를 세우고 경로를 표시"한다.

희망 속에서만 인간은 삶의 의미와 방향을 되찾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희망은 낙관과 다르다. 낙관의 본질은 "완전한 긍정", 즉 그저 "어떤 일이 좋은 쪽으로 흘러갈 거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따라서 낙관하는 자에게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았던 일, 불가능하게만 여겼던 일이 벌어지는 시간은 오지 않는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는 항상 '내가 그럴 줄 알았지' 하고 말할 뿐이다.

그는 현재의 삶에 완전히 붙잡혀 있다.

 

 

희망은 능동태다. 전혀 다른 삶에 대한 열망이고, 이제껏 없던 장소에 관한 이야기다.

희망은 오늘과 내일을 교배해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것, 한 번도 거기 있었던 적 없는 것"을 생성한다.

희망하는 자는 먼 곳에서 오는 목소리를 듣고, 알려지지 않은 것을 본다.

그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을 향해 나아간다".



낙관주의자는 현재에 안주하기에 그의 밝은 날은 한낱 행운에 불과하다.

그러나 희망하는 자는 어두운 계곡을 벗어나려고 험한 절벽을 기어오른다.

'아직 아닌 상태'로 가기 위해 그는 적극적으로 미지에 몸을 던진다.

희망하는 자의 밝은 날은 분투의 산물이고 모험의 열매다.

 



희망하는 자만이 이 삶을, 이 사회를, 이 세상을 더 나은 쪽으로 바꿀 수 있다.

현재의 불안에 지지 말고, 지금의 절망에 굴복하지 말라. 우리에겐 아직 보이지 않지만,

저 멀리에서 우리를 향해 나아오는 것들이 있다.

그러니 희망을 품고, 새로운 날을 마중하러 나가자. 때마침 새해가 다가오지 않는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출처 :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