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우리와 골짜기
섬진강을 따라 곡성에서 남원과 구례와 하동을 오간다고 하면, 지리산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이 있다. 천왕봉을 비롯한 봉우리들을 열거하며 혹시 넘어보았느냐고 묻는 것이다.
자주 바라보지만 오르진 않았노라고 밝히면, 가까이에 살면서 왜 등산하지 않았느냐고 다시 묻는다.
골짜기(谷)로 성(城)을 이룬 고을, 곡성에 살면서 봉우리와 골짜기에 관한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정상에 도전하려 일부러 찾아온 등반객은 봉우리를 넘고, 지리산과 섬진강을 이웃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은 골짜기를 오간다.
멀리서 바라보면 봉우리만 우뚝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골짜기들이 자못 깊다.
혈관처럼 뻗은 길을 따라 걷노라면, 솟대가 흔들리고 당산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크고 작은 마을이 구석구석 들어앉아 있다.
그 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가면 다른 이름의 골짜기가 마중을 나와 기다린다.
성벽을 쌓아 방어하지 않더라도 함부로 들어서긴 두려운 곳이 또한 골짜기다. 초행엔 한두 숲만
지나쳐도 방향을 분간하지 못한 채 길을 잃고 만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능선을 따라 산성을 쌓고 방문객을 막는 성이 아니라, 골짜기로 찾아드는
온갖 생물들을 차별 없이 받아들이는 성이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품으면서도 넉넉하게 내 가족과 내 마을을 지킬 수 있다.
골짜기를 요즘 유행하는 둘레길로 간주하는 이도 있을 법하다.
골짜기는 산의 둘레를 도는 길이 아니라, 산의 중심으로 향하는 길이다.
봉우리를 오를 때처럼 가파르진 않지만, 골짜기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어떤 골짜기의 오르막은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기도 한다. 아무리 험해도 고개를 살짝만
들어 우러르면 거기 훨씬 높은 곳에 봉우리가 있다.
그 봉우리까지 올라가지 않고, 고개를 넘어 내리막으로 접어들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저절로 신바람이 난다.
봉우리로만 산을 기억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사료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검토할 때도 성공과 영광과 경지를 먼저 따지고 살폈다.
그 사람이 가닿은 까마득하게 높고 뾰족한 봉우리를 다르게 평가하기 시작한 것은 섬진강에
터를 닦은 후였다. 1915m 천왕봉을 닮았든 1732m 반야봉을 닮았든, 그 봉우리는 한 인간이
이룬 놀라운 성취이면서 안타까운 한계였다.
거기까지나 오른 것과 거기까지밖에 오르지 못한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골짜기를 따라 산을 품으면 성취와 한계가 모호해진다.
어디가 골짜기의 시작이고 끝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다.
봉우리에선 한시간도 머물기 어렵지만, 골짜기에선 하룻밤을 보내도 좋고 한달을
묵을 수도 있다. 계곡물이 흐르고, 허기를 채울 동식물이 그득한 것이다.
2025년엔 몸과 마음을 편히 둘 곳을 저마다 찾았으면 좋겠다.
숫자 놀음에 놀아나지 말고, 효율성이나 속전속결이란 단어도 잊고, 어디로도 갈 수 있고
어디서도 멈출 수 있는 골짜기를 닮은 삶.
김탁환 소설가
출처 :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