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의 끝
UFO를 좋아한다. 아니다. 요즘은 UFO라 하지 않는다.
UFO(Unidentified Flying Object·미확인 비행 물체)는 이제 UAP(Unidentified Aerial Phenomenon·
미확인 공중 현상)라 부른다.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바꿨다. 외워야 할 신조어가 참 많다.
익숙한 단어를 바꾼 이유는 뭘까. 미국 정부에 따르면 “좀 더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다.
UFO는 외계인의 우주선이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거의 농담거리가 된 단어다.
UAP라 부르면 뉘앙스가 달라질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조삼모사다.
국제 뉴스를 즐겨 본다. 한국 뉴스는 너무 스트레스를 준다.
국제 뉴스에도 요즘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연초부터 재해와 전쟁으로 넘친다.
뉴스는 원래 희극보다 비극에 가깝다. 요즘은 다 비극이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다.
국제 우주정거장의 우주비행사가 부럽다.
재미있는 국제 뉴스도 있다. 미국 뉴저지주에 출몰하는 정체불명 드론 뉴스다. UAP다.
몇몇 사람은 패닉에 빠졌다. 미국 정부는 “뭔지 모르겠지만 안보에 문제는 없다”고 발표했다가
패닉만 키웠다. 설명은 가능하다. 사제 드론과 항공기 불빛이다. 별을 UAP로 착각한 경우도 있다.
그래도 계속 관련 뉴스를 보게 된다. 이유는 분명하다.
인류의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해 줄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염원하는 탓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 라틴어. ‘기계에서 튀어나온 신’이라는 뜻으로, 연극이나
문학작품에서 결말을 맺기 위해 뜬금없는 사건이나 인물이 출연하는 상황을 말함.
내가 몹시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는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1953)이다.
SF 문학의 고전이다. 압도적 기술력의 외계인이 침공한다.
그들은 인류의 기술 발전을 막고 나긋한 유토피아를 건설한다. 무슨 음모냐고?
알고 보니 외계인의 역할은 종말 위기 인류를 다른 차원으로 진화시키는 것이었다.
현실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없다.
초자연적 존재가 갑자기 문학적으로 등장해 모든 갈등을 해결해 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외계인이라도 “저 행성의 종자들은 골치 아프니 영원히 유년기에 머물게 놔두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될까? 인공지능이 인류 지능을 능가하는 날을 기다려보자.
뭐가 됐든 이보다는 나을 것이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