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늙은이'의 새해 변명
늙으니까 정신이 없다.
새파란 애송이가 어디 늙었다는 소리를 함부로 하냐. 역정 내는 독자도 계실 것이다.
나도 올해 쉰이 됐다. 막 늙기 시작한 애송이 정도는 될 것이다. 더는 새파랗지도 않다.
화가 많아 얼굴도 벌그죽죽하다. 뉴스를 그만 봐야 한다.
어머니가 사람 많은 곳만 가면 “정신이 없다”는 말을 하기 시작하신 나이가 딱 지금 내 나이다.
얼마 전 홍대 앞에 갔다. 젊음의 거리에 젊음이 지나치게 많았다.
“아이고 정신없다”는 말을 영감처럼 소리 내어 했다. 우리 모두는 결국 우리의 부모가 된다.
늙은이는 정신이 없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느끼는 탓이다.
늙으면 새 기술 같은 건 안 배워도 지장이 없어야 마땅하다. 반평생 배운 거로 살 수 있어야 한다.
21세기는 자비가 없다. 카카오 택시를 몰라 길에서 애타게 손 흔드는 늙은이에게도 없다.
키오스크 앞에서 아직도 긴장하는 쉰 살 늙은이에게도 없다.
늙은이들은 그래서 보수적으로 변한다. 보수가 거꾸로 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보수는 ‘급격한 변화보다는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늙은이들은 변화 앞에서 주저한다.
주저한다는 건 결국 변한다는 이야기다. 속도가 젊은이들보다 좀 느릴 뿐이다.
기후변화를 가장 불신하는 게 베이비붐 세대라는 글을 봤다.
지구를 망쳐놓고 모르는 척하면 다냐는 투의 글이었다. 늙은이들이 덜 민감하다고 화내지 말자.
그들은 1970년대에는 곧 인구가 폭발해 다 굶을 것이고, 80년대에는 곧 석유가 고갈돼 문명이
멈출 것이고, 헤어스프레이를 너무 써서 오존층에 구멍이 뚫려 모두 피부암에 걸릴 것이며,
2000년이 되는 순간 컴퓨터가 멈춰 지구가 종말할 거라는 지구적 재앙 예고편에 시달린 자들이다.
늙으면 의심도 많아진다.
그래도 우리는 헤어스프레이를 버렸다. 광견병 걸린 푸들 같던 80년대 헤어스타일과 함께 버렸다.
오존층은 지켰다. 뭐라도 지구를 위해 한 게 있긴 하다는 늙은이의 새해 변명이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