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얼음 속을 걸으며
maverick8000
2025. 2. 7. 16:38
내가 걸을 때면, 한 마리 들소가 걷는 것이다.
내가 쉴 때면, 하나의 산이 쉬는 것이다.
-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초크의 책 ‘얼음 속을 걷다’(밤의책) 중에서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길을 나섰다.
일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 성사된 1년 반 만의 만남이었다. 그런 날 지하철에서 뭘 읽으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얼음 속을 걷다’로 손이 갔다.
파리에 있는 친구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헤어초크가, 자기가 독일 뮌헨에서 파리까지 걸어가면
친구가 죽지 않을 거라고 믿고서 정말로 파리까지 걸어간 22일간의 여정을 기록한 책.
아끼는 누군가가 죽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그를 들소로도, 산으로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간절한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잘난 인간도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겠지.
나에게는 저런 경험이 없음에 못내 부끄러움을 느끼며, 쓸쓸히 얼음 속을 걷고 싶은 날이다.
황유원 시인 /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