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환자의 보호자는 자꾸 말을 바꿨다

maverick8000 2025. 2. 27. 09:32

 

 

할머니는 혼자 살았다.

며칠 인기척이 없었는데 악취가 난다고 이웃이 할머니를 구급대에 신고했다.

집에 들어가자 거실 바닥에 할머니가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이웃은 간단한 정보만 알았다.

“당뇨를 앓았다고 했어요. 남편이랑은 진작에 사별했고 자녀는 원래 없다고 했어요.

가끔 집 밖에 나왔는데 요즘은 통 안 나오시더라고요.”

 

환자에게선 독한 냄새가 났다. 대소변이 치워지지 않고 방치된 냄새였다.

여성 노인에게는 대부분 요로 감염이 동반된다. 전신이 익은 듯 피부가 붉고 뜨끈했으며

고열이 났다. 평소 상태가 좋았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것은 최근의 일인 듯했다.

 

일단 사회사업팀에 연락하고 어떻게든 가족을 찾았다.

응급실 업무는 때때로 탐정과 비슷할 때가 있다. 휴대폰 연락처에서 성씨가 같은 이름을 찾았다.

연락하니 느린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남동생이라고 했고 다른 가족은 전혀 없다고 했다.

할머니가 위독하다고 했지만 그는 담담했다. 시간이 걸리지만 곧 가겠다고 했다.

 

일단 필요한 검사를 했다. 염증 수치가 높고 혈당이 관리되지 않았다.

요로 감염은 왼쪽 신장을 거의 전부 침범했다. 발열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MRI에서는 감염이

방치돼 다발성 뇌경색이 나왔고 신장 수치도 높았다. 이대로 신기능이 회복되지 않으면

사망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의학적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독거 중인 할머니는 쓰러진 채 고열로 섬망에 빠졌고 방치되었다가 지금 내 앞에 왔다.

혼자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늦게 도착한 남동생은 말이 어눌했고 복장이 산만했다.

 

“원래 혼자 잘 살던 양반이에요. 그, 연명 치료도 거절했어요. 평소처럼 집에 누워서 자면

나을 거예요. 응급처치만 해주세요.”

“그건 질병을 치료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에요. 이렇게 방치된 채로 돌아가신다는 서약서는

더더욱 아니고요. 입원해야 합니다.”

“아니, 돈이 없거든요.”

 

그가 자꾸 말을 바꾸자 응대하기 어려웠다. 환자 상태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드문 일은 아니었다. 각자 개인사는 다양했다.

어쨌든 그는 환자의 뜻을 대리하는 유일한 보호자였다.

“집에는 못 가세요. 그러면 작은 병원이라도 알아봐 드릴까요?”

“그러시든지요.”

 

여전히 환자는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었다. 갑자기 사회사업팀에서 연락이 왔다.

이전 가정 방문 요양 보호사와 연락이 되었다고 했다. 전화기 너머의 그는 화가 난 듯했다.

 

“그 남동생이 또 돈이 없다고 했죠?”

“네. 경제적으로 어려우시다고. 아닌가요?”

 

“할머니 돈 넉넉히 있어요. 옛날에 장사가 잘됐다고 했거든요. 또 본인 생활 꾸릴 정도는 건강했어요.

그 남동생이 일부러 누나를 안 돌봐요. 제가 볼 때는, 유산 때문이에요. 빨리 상속받고 싶고,

유산 줄어드는 것도 싫고. 그 사람 말 듣지 마세요.”

 

그는 한참 성을 냈다. 나는 머리를 싸맸다. 예측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

우리는 보호자의 정보에 의존하고, 그 의지에 따라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의 한계다.

사실은 이 통화조차 진실과 가까운지 알 수 없다. 정작 당사자의 의지는 결코 모른다.

그럼에도 결정이 어렵지는 않았다.

 

“보호자분. 그냥 여기 입원하세요. 대학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하는 분입니다. 동의하세요.”

 

내가 강하게 나가자 보호자는 조용히 입원 절차를 밟았다.

내 결정으로 할머니는 중환자실에서 치료받게 되었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 법적 보호자에게 모든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기적적으로 회복돼도 다르지 않다. 환자는 스스로 삶을 건사할 수 없고 유일한 보호자는

적극적으로 환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그런데 보호란 무엇이고, 치료란 무엇이며, 어디까지가 인생과 결정인가.

사람은 결국 쇠약해지고 본인 의지를 잃어버린다.

그 뒤에는 자신도 알 수 없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

적어도 이 삶을 도울 방법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남궁인 이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