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와 모비딕
문학의 영토가 좁아졌다고 하는 시대지만, 문학은 생각보다 우리와 가까이 있다.
이를테면 지금 내 책상 위에 올라 있는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에서 시작해 보자.
‘아메리카노’는 커피에 물을 타 먹는 (이상한) 미국 사람들을 지칭하는 이탈리아어이고,
톨 사이즈는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다.
그렇다면 스타벅스는? 이름도 낯설지만, 어떤 사람은 매장과 컵에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는
세이렌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스타벅스라는 이름과 세이렌 이미지는 어디서 왔을까?
‘스타벅(Starbuck)’이 미국의 소설가 허먼 멜빌의 장편소설 ‘모비딕’에 등장하는 일등 항해사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꽤 많을 것이다.
창립자들이 그 전에 먼저 고려한 이름은 스타벅이 타는 배 ‘피쿼드(Pequod)’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보다 적을 것이다.
그들은 논의 끝에 ‘피쿼드 한잔’보다는 ‘스타벅(스) 한잔’이 더 어울린다고 결론지었고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옳았다. 물론 작품 속 스타벅은 딱히 커피 애호가가 아니며, 그에게서는
해양의 낭만과 커피 무역, 항해의 모험적 이미지만 추출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반쪽 세이렌의 이미지가 왜 필요했는지도 이해가 간다.
일단 이름을 정한 창립자들은 그에 걸맞은 상징을 내세우려 고민하다가 우연히 어느 해군 서적에서
세이렌 그림을 발견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던 인어들.
그들이 부르는 아름답고 위험한 노래. 이 신화적 이미지는 고객을 검은 음료 한잔 앞으로 유혹하는
커피에 관한 완벽한 메타포이자 아이콘으로 변모한다.
어쩌면 스타벅스에서 유독 음악을 중요시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문학은 어디에나 있다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책상 위에서, 향기를 풍기고 노래를 부르며.
문지혁 소설가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