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과 사랑

내성의 꽃 / 이동욱

maverick8000 2025. 3. 13. 09:26

 

 

 

 

내성의 꽃  /  이동욱

 

 

당신과 만나지 못한 날이었지

 

집으로 돌아와

들고 간 꽃다발을 생수병에 담가놓았다

 

방은 좀 더 분주해졌고

꽃을 볼 때마다 전해줄 말을 중얼거리다 보면,

투명한 생수병 물이 줄어들어

꽃은 무언가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는 것 같았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방안에 향기가 가득했다

가구가 하나 더 는 셈이다

 

계절은 돌아볼 때만 선명했다

 

몇 번의 약속이 있었고

그 말을 하지 못했지만

오래 간직하는 기억은 오해여도 좋았다

 

물을 가라주기 위해 줄기를 집어들었을 때

마른 꽃잎이 몇 개 떨어졌다

당신은 이제 내게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줄어든 물의 양을 다시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