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개두릅
우리나라는 ‘나물의 나라’이다.
잎을 뜯고, 줄기를 꺾고, 뿌리를 캐어 수많은 푸성귀, 즉 나물을 섭취했다.
식용 가능한 자생 나물이 무려 500가지나 된다고 하니 진정한 K-푸드 밥상은 나물로
완성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봄은 나물의 계절이다. 땅이 풀리기 무섭게 산에서, 들에서 쑥, 달래, 냉이 등 각종 나물이
지천으로 돋아난다. 그중에서도 귀족 나물이 있다. 두릅이다.
나무 끝에 자라난 새순을 뜯어 먹으니, 채취 방법부터 차원이 다르다.
쌉싸름한 쓴맛이 있지만, 묘한 향과 개운한 맛으로 오히려 식욕을 돋우는 별미로 사랑받았다.
크기도 어른 손바닥만 한 것이 보통이니, 춘궁기를 위해 준비된 나물로 이만한 것이 없다.
퇴계 선생이 목두채(木頭菜), 즉 두릅을 ‘산나물 중에 으뜸’이라고 한 이유를 알만하다.
그런데 참두릅과 족보가 다르지만, 서민들과 더 친한 두릅이 있다. 엄(음)나무로 불리는 ‘개두릅’이다.
새순은 따서 먹고, 가지와 껍질은 각종 국물을 우려내거나 한약재로도 중요하게 활용되니 버릴 게 없다.
촘촘한 가시 때문에 민간에서는 귀신을 쫓고 행운을 가져오는 길상목으로 대접받았다.
매년 이맘때, 제철 개두릅으로 겨우내 묵은 국민 입맛을 되살리는 고장이 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생산량을 자랑하는 강릉이다. 2025년 현재 강릉의 개두릅 재배면적은 304㏊이다.
전국 전체의 절반에 육박한다. 1㏊당 수확량이 보통 2t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강릉에서 한 해
생산되는 개두릅은 608t에 달한다. 지리적 특성에 기반한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아 강릉 전역의 개두릅은
지리적표시 등록 임산물(산림청 제41호)로도 지정돼 있다.
예로부터 우리말에서 ‘개’라는 접두사가 붙으면 ‘토종’을 가리키는 뜻도 있지만, 변변치 않은 것을
일컫는 경우가 많았다.
개살구, 개복숭아, 개망초, 개떡 등등, ‘개’자가 붙으면 거의 대부분 ‘진짜를 흉내 내는 가짜’ 인상이 짙다.
하지만 개두릅은 예외이다. 진짜를 능가하는 친숙한 봄나물로 대접받고, 자리 잡았다.
개두릅이 제철인 지금, 강릉 방문길에 개두릅을 맛보지 않는다면, 그건 시쳇말로 ‘개좋은’ 강릉의
진짜배기 봄맛을 모르고 지나친 것이다.
출처 : 강원도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