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
사람들이 가장 잊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가져보지 못한, 받아보지 못한 어떤 것에 대한 회한이다.
여기에 후회보다 무거운 ‘회한’이란 말을 쓰는 건 해본 것보다 해보지 못한 것을 오래 기억하는
우리의 심리 구조 때문이다.
심리학에는 ‘재양육’이라는 말이 있다.
내면의 상처받은 아이를 불러내 다시 양육하는 것인데,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을
스스로 채우는 것이다. 중요한 건 거짓된 반응 없이, 솔직하게 받고 싶었던 사랑을 어른이 된 지금,
‘내가 나에게 주는 것’이다.
듣고 싶었지만 듣지 못했던 진심 어린 사과, 성적이나 성취에 상관없는 지지와 자유, 부족하고 모자란
나로도 사랑받고 있다는 굳건한 믿음 같은 것 말이다.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기에 우리 중 누구도 100%의 사랑을 받아본 적 없다.
자식도 자식이 처음이듯 인생은 편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딘가 모자라고 부족한 우리를
채울 사람은 그러므로 결국 나 자신뿐이다.
그러니 홀로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걷고 있을 때, 등대 같은 삶의 주문 하나는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안전지대라 부른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10년 된 반려견이나 30년 지기 친구일 수 있고, 옛 동네 놀이터의 벤치나
자물쇠가 달린 비밀 일기장일 수도 있다.
우울할 때, ‘My favorite things’를 부른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 수녀가 천둥을 무서워하는 아이들에게 불러주던 노래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장미 꽃잎과 크림색 조랑말, 바삭한 사과 과자 대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열해
개사해 부른다.
따뜻한 밀크 티와 오트밀 쿠키, 모닥불 타는 냄새와 4월의 벚꽃 비,
“내일은 아직 아무것도 실패하지 않은 하루라고 생각하면 기쁘지 않아요?”같은 빨간 머리 앤이 한 말들을 적는다.
우리가 좋아했던 것을 애써 기억하고 기록하는 건 깊은 개울 위에 돌덩이를 내려놓는 것과 같다.
폭우가 쏟아져 물살이 거세졌을 때, 미리 내려놓은 그 돌덩이 하나하나가 어둠 속 반딧불이처럼
길이 되어줄 것이므로.
백영옥 소설가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