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주는 손이 가진 힘

maverick8000 2025. 6. 5. 16:49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이던 2021년은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포켓몬 카드 수집 열풍이 불던 시기였다.

놀이터, 문방구 앞, 쉬는 시간 복도 할 것 없이 모든 공간이 교환과 거래의 장이었다.

희귀한 카드를 하나라도 더 모으기 위해 서로 흥정을 벌이는 틈에서 아들은 가치가 높은 카드를

내어주고 싸구려 카드를 받아오곤 했다.

친구가 와서 “그거 하나만 줘”라고 하면 머뭇거리다가도 거절하지 못한 채 내주기도 했다.



저녁 식탁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모르게 “그건 좀 바보 같았던 거 아니야?”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입술을 파르르 떨던 아들은 울음을 꾹 참고 대답했다. “그냥, 친구가 너무 갖고 싶어 하길래….”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는 아이를 안아주곤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기적인 마음이 있고, 쉽게 나눠주는 사람을 오히려 바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런 사람들 때문에 네가 가진 따뜻한 마음까지 의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음엔 그냥 다 주지 않고 반만 줄게요.”



배시시 웃음이 났다. 주는 사람으로서 지혜로워진다는 건, 타인을 돕되 자신을 잃지 않는 법을

배워가는 일이겠구나 싶었다.

세계적인 조직심리학자이자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의 교수 애덤 그랜트는 저서 ‘기브 앤드 테이크

(Give and Take)’에서 사람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받는 것보다 더 많이 주려는 ‘기버(giver)’, 자신이 받는 것을 우선시하는 ‘테이커(taker)’,

받은 만큼 돌려주는 ‘매처(matcher)’다.

 



그랜트 교수는 기버가 가장 많은 실패를 겪는 동시에 가장 큰 성공을 거둔다고 말한다.

단기적으로는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신뢰를 기반으로 한 관계 속에서 더 높은 성과와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 ‘더 많이 가지려는 경쟁자들’만 있는 건 아니지만 주는 사람이 많아질 때 결국 성공에

가까워질 뿐 아니라 세상을 조금 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든다는 것, 그 신념을 아이의 가슴에 심어주고 싶었다.



1800년대 미국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샘슨’이란 청년을 떠올려 본다.

당시는 노예제 폐지가 정치적 이슈였고 여론조사 결과 샘슨은 38%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1위는 현직 주지사였던 조엘 매트슨(44%), 3위는 대법관 출신의 라이먼 트럼블(9%)이었다. 

샘슨은 고민했다. 그대로 선거를 치르면 매트슨이 당선되고 노예제는 유지될 공산이 컸다.

그는 뜻을 같이하던 트럼블에게 후보직을 양보하고 그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선거 결과 트럼블은 51%의 득표율로 당선된다. 기득권이나 정치적 타협 없이 이뤄진 이 결단은

이후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결정적 디딤돌이 됐다.

샘슨, 그는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대통령으로 꼽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한때 필명으로 썼던 이름이다.



그랜트 교수는 링컨을 대표적인 ‘기버’라 평가한다.

기버는 때때로 손해를 본다. 그러나 그 손해는 헛되지 않는다.

진심은 결국 사람을 움직이고 역사를 바꾸는 힘이 된다.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마친 대한민국은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지도자와 정치인들이 이제는 스스로 묻고 답할 차례다.

그 중심엔 ‘무엇을 얻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줄 수 있는가’가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성경은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고 기록한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겸허하게 낮추고, 자기 몫을 챙기기보다 타인에게 베풀며, 헌신을 이념이 아닌

실천으로 바꾸는 손을 지닌 지도자를 기대해본다. 주는 손이 가지는 힘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최기영 미션탐사부 차장
[출처] -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