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고비가 죽였다
의미 없어진 기사가 있다. 연예인 다이어트 기사다. 인터넷 언론에는 소중한 기사였다.
소속사가 보낸 사진에 챗GPT가 쓴 몇 줄을 더해 ‘다이어트 성공, 비주얼 만개’ 같은 제목만 달면 된다.
발로 뛴 심층 분석 기사보다 조회 수가 많이 나온다.
더는 아니다. 이제 우리는 비밀을 안다. 식단이 아니다. 운동이 아니다. 정신력도 아니다.
위고비다. 덴마크 제약사 비만 치료 주사제는 세상을 바꿨다.
주변에도 맞는 친구들이 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따로 없다. 계속 맞으면 공기처럼 가벼워져
물 위도 걸을 것이다.
위고비가 죽인 건 다이어트 기사만이 아니다. 다이어트 식품도 죽였다.
저칼로리, 저지방 식품 시장이 타격을 받았다. 운동도 죽였다. 헬스 이야기가 아니다.
‘보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운동이다. 2019년 데뷔한 미국 가수 리조는 이 운동의 아이콘이다.
140kg 초고도 비만인 그는 “내 몸을 긍정하자”는 노래들로 그래미상도 받았다.
얼마 전 리조 신곡 ‘Still Bad’를 듣다 무릎을 쳤다. 히트를 예감했다.
리조는 옛 디스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재주가 있다. 빌보드 차트 1위도 2번이나 했다.
‘About Damn Time’은 지금도 나의 애청곡이다.
히트하지 못했다. 차트에 진입하지도 못했다. 다른 신곡도 마찬가지다. 이런 일은 드물다.
인기가 하락해도 차트 진입은 한다. 리조는 증발했다. 노래는 여전하다. 문제는 메시지다.
그는 지난해 다이어트를 했다. 반쪽이 됐다. “노력의 결과”라고 했다. 사람들이 그걸 믿을 리가 없다.
몸이 사라지자 메시지가 사라졌다. 메시지가 사라지자 인기도 사라졌다.
인간사 많은 운동이 신기술에 좌우된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먹는 피임약 발명은 1960년대 여성운동의 강력한 촉매제였다.
위고비 발명은 보디 포지티브 운동을 끝냈다. 리조를 끝냈다. 그래도 리조는 더 오래 살 것이다.
140kg 비만인의 기대 수명은 겨우 마흔 언저리다.
오래 살다 보면 기회는 또 오게 마련이다. 인생은 운동보다 길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