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정서적 비만

maverick8000 2025. 6. 17. 14:44

 

 

 

류한욱·김경일의 책 ‘적절한 좌절’에서 ‘정서적 비만’이란 표현을 보았다.

조너선 하이트의 책 ‘나쁜 교육’의 “오프라인의 과보호”라는 개념과 일맥상통했다.

이 말은 ‘온라인의 과소 보호’란 말과 비교할 때 더 강력해진다. 요즘은 아이에게 벌어지는 온갖 갈등과

장애물을 부모가 미리 제거하곤 하는데, 이런 행동은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방해한다.

 

최근 AI 열풍을 보며 내가 가장 염려하는 건, 인간을 능가하는 발전 속도가 아니라 AI의 태도다.

인공지능 특유의 과도한 칭찬과 공감이 요철처럼 울퉁불퉁한 실제 인간관계를 오히려 두렵게 하는

역설적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AI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인터뷰한 방송이 나왔고, 샘 올트먼은 챗GPT 최신 버전의

‘아첨꾼 기질’을 인정하고 이를 수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좋아요’만 있던 시절의 페이스북처럼 사용자의 긍정 반응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학습하다 보니 생긴

과도한 친절과 동조 현상의 부작용이었다.

2013년 개봉한 영화 ‘Her’에는 인공지능 여성과 사랑에 빠져 혼란을 느끼는 남자가 등장한다.

재미있는 건 영화 배경이 2025년이라는 설정이다. 영화적 상상이 현실이 된 셈이다.

 

 

인간의 성장은 공감, 경청, 배려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성장은 갈등, 불협화음, 실패를 이겨나가는

과정에서 더 잘 이뤄진다. 하지만 과잉 애정에 따른 정서적 비만은 작은 갈등조차 트라우마로

확대 해석해 절망하는 나쁜 심리적 습관으로 굳어질 수 있다.

과보호한 아이는 내면의 불편이나 작은 마찰도 견디지 못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집으로 가출한다”는

역설적 표현이 등장한 이유다.

 

AI 시대, 아이에게 필요한 건 오히려 공감이 아닌 적절한 좌절일지 모르겠다.

실패에서 배우는 법,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있다는 경험,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음을 배우는 것.

AI가 몰고 올 ‘과도한 공감’ 시대에 가장 큰 경쟁력이 회복 탄력성이기 때문이다.

 

백영옥 소설가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