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이기는 한 가지 방법
지난 1985년 1월, 입사 2년 차이던 나는 겨울 산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서울 근교 관악산이나 북한산 같은 가까운 산 말고 먼 산에 가고 싶었고,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에 들고 싶었다. 겨울 산에 올라 눈 덮인 산등성이들을 굽어보며 찬바람을 정면으로 맞고 싶었다.
그런데 모처럼 시간이 났지만, 동행이 구해지지 않았다.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하자면, 그때는 주 6일 근무에 주말 근무가 다반사라 친구들과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다. 나는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이었지만, 낯선 곳에서 밤을 보낸 적은 없었다.
마음은 벌써 눈 덮인 가야산으로 내달리는데 혼자 떠나는 게 영 무서웠다. 갈지 말지 수없이
망설이는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올라왔다.
‘누군가가 내 시간에 맞춰 기다리다 함께 떠나줄 가능성은 앞으로도 별로 없다. 혼자 가는 게
두려워서 못 가면 앞으로도 떠나지 못한다. 여행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다른 일도 그럴 텐데 그래도 괜찮은가? 그렇게 살 것인가?’ 자문하자 답이 찾아졌다.
‘아니’라고. 두려움에 지는 삶은 살고 싶지 않다고.
답이 명확해졌으니 그다음은 감행하기. 그렇게 스물세 살의 나는 혼자 겨울 가야산으로 떠났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두려움을 물리치는 것과 실제로 맞닥뜨리는 건 매우 달랐다.
고속버스를 타고 가 다시 완행버스로 갈아탔던가…. 겨울 해는 짧아 밖은 벌써 깜깜한데 종점이
가까워 오자 버스 안에 승객이라곤 나 혼자 남았다. 누구 눈에도 어린 여자 혼자라는 게 빤해 보일 것
같아 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졌다. 종점에서 내려 하룻밤 머물 곳을 찾았다.
40여 년 전 시골 마을에 에어비앤비나 인터넷 예약이 있을 리 없지 않나. 민박이라고 써 붙인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고, 다행히 빈방이 있었다. 마을에 식당이 없어선지 민박집에서 저녁밥까지 차려주었다.
서둘러 저녁상을 물리고는 아무 생각 하지 않고 그냥 자 버리기로 했다.
위험을 느낀 자라가 목을 등껍데기 속으로 숨기듯, 불안하고 무서워 전등을 켜둔 채 이불을 뒤집어썼다.
긴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떠서 잠시 천지 분간을 하고 나니 이 생각이 날아와 꽂혔다.
‘휴…, 밤새 무사했구나!’ 여자 혼자 여행하는 일이 그다지 없던 시절, 딴에는 높은 벽 하나를 돌파한
경험이었고 그걸 밑천 삼아 그 후로는 인도로 네팔로 유럽으로 이집트로 시리아로, 세상의 여러 곳을
홀로 떠돌았다. 그때 만약 첫 관문 앞에서 두려움에 주저앉았다면 그 후 나의 ‘어드벤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용기도 쪼그라드는 걸까. 여권이 만료된 줄도 모를 만큼 10년 넘게 해외여행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다 지난봄, 가족을 잃는 슬픔을 겪자 불현듯 고흐의 그림이 보고 싶었다.
암으로 형을 잃은 동생이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경비원으로 들어가 예술작품들 속에서 치유에
이르렀다던가. 나도 그러고 싶었다. 고통 속에 살다간 예술가의 그림 앞에 서고 싶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도 보고 싶었다. 가서, 말년의 고통을 그림으로 남긴 그가 건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었다.
그런데 너무 오랜만이어서일까. 길에 나서는 마음에 두려움이 일었다.
내가 서울에 얌전하게 있는 동안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고, 테크놀러지가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곳 중의
하나가 여행 분야다. 숙소·교통·일정…. 모든 준비가 낯설었다. 그렇지만 패키지 여행은 싫었다.
짜여 있는 스케줄을 따라가면 되는 그 안전한 수동성이 나는 싫었다.
무엇보다도 이번 여행은 슬픔이 가득한 마음으로 생전에 슬픔을 겪었던 예술가와 대면하러 가는 길이었다.
적어도 이번엔 단체 관광은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다시 스물세 살의 나를 엄습했던 두려움을 꺼내 보았다.
‘맞아, 그때도 그랬어. 불안하고 무서웠어. 할 만해서 한 게 아니었어. 다른 마음이 더 커서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던 거야….’
이쯤에서 두려움에 지지 않는 나의 비법 하나를 꺼내 본다.
뭔가를 도모하고자 하지만 두려움 앞에서 머뭇거려질 때 나는 안중근 의사를 생각한다.
‘거사’를 앞두고 그는 두렵지 않았을까?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그도 두려웠을 테지만, 그럼에도 그에겐
완수해야 할 임무와 사명이 있었다. 그 마음이 두려움을 넘어서게 했을 것이다.
감히 그분에게 비할 바 못 되지만, 겁 많은 후생 하나는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며 흩어졌던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발을 내디딘다. 돌아보니 그동안 내가 했고 결정했던 일들은 무섭지 않고 겁나지 않아서
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다. 불안하고 두려웠지만 그보다 더 큰 마음이 있었던 거다.
하고 싶다는 마음, 내가 맡았으니 어려워도 해내야 한다는 마음….
엊그제 미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성모상 앞에 촛불을 밝혔다. 마침 불어온 바람에 꺼질 듯 꺼질 듯하다가
겨우 심지에 불이 붙었다. 그렇게 초에 불을 붙이며, 지금껏 나를 움직이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 힘도
비슷했겠구나 생각했다. 생각은 계속되었다.
내내 꼿꼿하고 강했던 게 아니고 꺼질 뻔한 적도 적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다시 일으켜 세워 지금껏
왔다는 것. 앞으로도 두려움 앞에서 움츠러들 때마다 오늘의 이 마음을 떠올려야겠다는 것.
아울러 세상의 모든 큰 발자국도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고 싶어서, 또는 해야 하는 마음들이
내디딘 걸음이었을 거라는 것!
이 생각이 여러분의 두려움도 조금이나마 줄어들게 하면 좋겠다.
최인아 최인아책방 대표, 前 제일기획 부사장
출처 :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