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엄마의 치트키

maverick8000 2025. 6. 25. 08:29

 

 

“엄마, 치트키야. 그건.” 식당으로 가는 길에 말했다.

사전 약속도 없이 가족 모두가 일제히 한자리에 모인 건, 그녀가 던진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젊은이들이야 치트키가 익숙한 단어겠지만, 그녀에게는 생소했을 터. 다짜고짜 뱉은 내 말에

엄마는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다. 하고 싶은 말은 미루고 일단 단어 설명부터 했다.



치트키는 온라인 게임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특수한 행동을 하도록 실행하는 명령어다.

승리를 이끄는 아이템이나 캐릭터를 지칭하기도 하는데, 언젠가부터 원래의 용처를 넘어

광범위하게 쓰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자면 정장이나 평상복 등 어떤 옷에도 두루두루 어울리는 가방을 일컬어 치트키 가방,

비빔밥에는 참기름이 치트키라고 표현할 수 있다.

대체로 상황을 단번에 해결시키는 강한 무엇, 효과적인 것을 말할 때 쓰인다.



엄마에게도 있다. 자식에게만 쓸 수 있는 무적의 치트키가.

내 입장에서는 언제든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고, 어디서든 만사 제치고 달려가게 만드는

비장의 무기인데, 정작 당신 본인은 몰랐던 눈치다.

자식들에게 부담을 줄까 싶어 자주 언급하지 않는, 꾹꾹 눌러 담은 마음이 얼마나 막강한지

이참에 알려드리기로 했다.

“그러니까, 엄마. ‘내 강아지들, 보고 싶구나’ 하는 말이 엄마의 치트키라고요.”

사랑이 깃든 선언, 그리움이 섞인 호출 앞에서 세상 그 어떤 일도 대수롭지 않아진다. 그녀는 백전백승이다.



이어지는 소감에 나는 또 무장해제된다. “얼굴 보니 좋다. 같이 밥 먹으니 좋다.”

그녀의 기쁨이 내 무심함의 크기와 비례하는 것 같아 면목이 없다.

엄마의 치트키 앞에서는 언제나 투항할 수밖에. 좋아서, 고마워서, 그리고 당신이 나에게 ‘한 방’이

돼주는 존재라서.

만남은 짧고 그리움은 길어지는 세상에 엄마의 치트키가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각자의 집으로 흩어지는 가족들, 잘 가라며 흔드는 손이 재회를 약속한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출처] -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