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달과 부모님
‘봄풀은 푸르건만 임은 가고 아니 와’라는 제목의 기사가 1928년 4월 7일자 동아일보에 나왔다.
그해 4월 6일은 음력으로 윤2월 16일이었다.
한식을 맞아 여러 외곽의 공동묘지에 성묘객이 몰린 광경을 소개했다. ‘특히 금년은 윤월이 있는
까닭인지 퇴폐한 분묘에 역사하는 사람도 많고, 새로 움트는 봄 떼를 어루만지며 한번 가고 다시
오지 않는 이를 생각하고 묵은 슬픔을 새로이 자아내어 목을 놓고 통곡하는 부녀들도 많았었다’라고 실었다.
95년 전의 이 신문기사와 마찬가지로 올해 4월 6일 한식이 포함된 윤2월이 들었다.
3월 22일부터 윤2월이 시작된다. 4월 19일까지 한달간이다.
음력은 달이 지구를 공전하는 한달 주기를 기준으로 하기에 태양력의 1년 365일이 아닌 354일쯤 된다.
양력과 음력의 날짜 격차를 없애기 위해 3, 4년에 한번씩 음력은 13개월이 된다.
윤달은 1년 열두달의 규칙에서 벗어난 공달이어서 ‘곤란함이 없는 달’로 여겼다.
공달은 인간을 감시하고 심판하는 신이 없는 시간으로 믿어왔다.
그래서 신비롭고 주술적인 성격을 부여해 세 곳의 절을 돌면 극락에 간다고 믿는 ‘세절밟기’ 풍속이
오래됐다. 현대 들어 사찰에서 활발한 단체여행 ‘삼사순례’는 예부터 개인이 해오던 세절밟기 습속이
대중교통이 발달하면서 그 연장선에서 등장한 문화이다.
이 윤달을 손꼽아 기다려온 이들 중에는 수의 제작처가 있다.
‘윤달에 수의를 지어두면 오래 산다’라는 속설이 이어지길 바라며 성수기를 기대하고 있다.
가족문화가 예전 같지 않으면서 자식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수의를 맞추는 경우도 제법 생겨났다.
자녀가 먼저 얘길 꺼내지 않을 경우엔 넌지시 운을 떼기도 하겠으나, 어느 집이건 원만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게 마련이다. 실상 이런 속신이 아니라 살날이 얼마남지 않은 부모님의 그 외로움을
넉넉히 알고 있으면서도 챙기지 못한 미안함이 더 많은 수의를 짓도록 이끌 것이다.
선조 분묘를 이장하거나 납골당에 유해를 안치하기 위해 개장하는 작업도 윤달에 맞춰서 한다.
공원묘원과 화장장 등에서는 윤2월 한달간 밀려드는 수요를 제때 감당하기 위해 서비스 체제를
갖췄다는 뉴스도 나왔다. 신의 영역에 있는 분묘 작업의 경우는 탈을 일으키지 않는 가장 좋은 시기로
윤달을 기다린 풍속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윤달이 되면 부모님 생각이 더 간절한 착한 사람들이 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음껏 형편껏 다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거나 혹은 생전에 살갑고 도타운 정으로
가슴 언저리에 먹먹함이 가득한 이들이다.
얼마 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친 묘소에 ‘살(殺)’자 등을 적은 돌을 넣어 훼손한 사건이 있었다.
한갓 주술 행위로 시대적 정치적 흐름이 꺾일 것이라 믿는 부류의 소행이다.
윤2월 봄 떼가 잘 돋을 수 있는 시기를 맞았다.
출처 : 강원도민일보 [박미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