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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자식을 직접 가르치지 말아야 할 이유

by maverick8000 2024. 3. 22.

 

 

평생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한 사람도 가장 힘든 대상은 자식이라고 말한다.

남을 가르치는 일은 어느 정도 숙련이 되지만 자기 자식 가르치는 일은 여전히

힘들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개인적 감정이 문제다.

가르친 대로 변화하지 않는 자식에게 화가 나고, 화가 나면 말이 곱게 나오지 않았으니

서로 상처만 남을 게 분명하다. 생각해보면 자식도 화가 났을 테다.

당신은 제대로 살지 못하면서 가르치려고만 하는 부모에게 자식 역시 화가 났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식은 부모가 직접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려 하다가 부모 자식 간에 감정의 골이 깊어져 인연을 끊는

최악의 경우도 생긴다. 그것이 어찌 이 관계에만 한정되랴.

부모도, 배우자도, 형제도, 친한 친구도 잘못을 직접 지적하고 타이르고 가르치려 해서는

안된다. 꼭 가르쳐야 할 게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 한다.

그것이 인연을 오래 이어가는 방법이다.

 

공자에게는 공리(孔鯉)라는 아들이 있었다.

공자는 아들을 아끼고 사랑했지만 직접 가르치지는 않았다. 시(詩)나 예(禮)를 배우라고

지나가는 말로 제안하는 정도였다.

그토록 높은 지적 수준을 지닌 공자는 왜 자식을 직접 가르치지 않았을까?

자식과 인연을 끊는 최악의 상황은 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맹자는 부모 자식 사이는 애초부터 잘못을 지적하거나 가르치는 관계가 아니라고 말했다.

핏줄로 이어진 인연이기에 강요하거나 타일러서 상처를 남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식을 서로 바꿔 가르친다는 ‘역자이교지(易子而敎之)’ 교육철학을 제시했다.

비싼 수업료를 주고 선생에게 자식을 맡기고, 강사료를 내고 배우자의 운전연수를 부탁하는

이유는 가르치는 과정 속에서 서로간 상처를 주고받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맹자는 영원히 관계를 이어가야 할 사람에게 직접 가르치면 안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가르친다는 것은 바른(正) 곳으로 인도하는 일이다. 그런데 내 자식이 바른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으면 화를 내게 되고, 화를 내게 되면 감정의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反傷·반상).”

관계가 친밀할수록 기대치도 더 크고, 섭섭하고, 서운해져 결국 상처를 받게 된다.

 

“부모는 나를 바르게 살라 가르치시는데 부모가 바른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자식이 부모를 원망하게 되고 결국 부모 자식 간에 감정이 상하게 될 것이다(父子相傷·부자상상).”

남에게 지적하고 가르치는 대로만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자신은 제대로 살지 못하면서 남을 가르치는 데는 선수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부모 자식 사이에는 본래부터 잘잘못을 따지는 게 아니다

(父子之間不責善·부자지간불책선).”

옳고 그른 것을 따지다 보면 서로 갈등이 생겨 마음이 멀어지고, 마음이 멀어지면 부자지간에

이보다 불상(不祥)한 것이 없다는 의미다.

 

사람들은 흔히들 말하는 선생병(先生病)을 가지고 있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가르치고, 훈계하는 선생이 되고 싶은 고질병이다.

선생병에 걸린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옳고, 다른 사람에겐 모두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선생 노릇을 하려다가 결국 상처를 줘 멀어지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평생 함께 가야 할 사람이라면 면전에 대고 직접 지적하지 말자.

우회해 스스로 깨닫게 하든, 돌려서 곡진하게 설득하든,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든 말이다.

만날 때마다 가르치려는 사람 주변에는 상처받은 사람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출처 : 농민신문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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