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450 일년 넘게 밥을 같이 먹은 짝꿍이 돌연 사라졌다 거실 소파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는데 까치 한 쌍과 멥새 두 마리가 솔가지 사이를 휘젓고 다닌다. 자세히 보려고 일어나니 낌새를 알아챈 놈들이 총알같이 날아가 버린다. 혹시나 다시 오려나 하고 식빵을 뜯어 창문턱에 뿌려놓고 다음 날 보니 흔적도 없다.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다고 소문이 났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녀석들 덕에 창밖 풍경에 생기가 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새와 좋은 관계를 틀 때는 아니다. 당장 이웃과 친분을 쌓아가는 게 시급하다. 성격상 나는 사람들과 마주칠 때마다 번번이 인사하기가 버겁다.반면 밥을 같이 먹는 내 짝꿍은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이곳에 들어왔는데도 친화력이 남달라서아무하고나 잘 어울린다. 체중이 32kg에 불과한 약골 중 약골인데도 그녀는 포켓볼의 고수이고탁구 동호회 회.. 2026. 9. 25. 온몸 암 번진 80대 경비원의 선택 "5살 꼬맹이가 날 찾을텐데..." 온몸 암 번진 80대 경비원의 선택 마르고 수척한 고령의 남성이 응급실로 왔다. 병원을 오래 다녔던 것 같은 외양이었지만 기록은 전혀 없었다.딸과 함께 온 그는 숨이 차다고 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에게 땀내가 풍겨왔다.최근에 증상이 시작되었다는 점이 뭔가 이상해서 그에게 물었다. “정말로 앓던 병이 없습니까?” “병원에 안 다녔습니다. 다만, 배에서 뭔가 만져진 지는 한참 되었습니다.” 그의 배를 더듬었다. 단단하고 울퉁불퉁한 종괴가 만져졌다. 숨이 찬 증상과 연결해보면최악의 진단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에게 재차 물었다. “살이 빠지지 않았습니까?” “최근에 살은 좀 많이 빠졌습니다.” “이게 만져졌을 때 병원에 올 생각을 안 하셨습니까?” “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2026. 9. 25. 허리 통증으로 입원한 날들이 준 뜻밖의 선물 악! 밥 잘 먹고 의자에서 일어나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선수 시절에도 허리 통증을 많이 겪어봤지만 이번처럼 기분이 이상하게 삐끗하기는 처음이다. 통증이 심해 의자나 침대에서 일어나 한걸음 내디디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다. 모든 근육이 동원되는 움직임을 시작하기 위해 동작의 시작점과 끝점까지 계산해 조심조심 움직여야 했으니까. 일상생활이 많이 불편했지만 ‘나는 통증 관리에 베테랑이지’ 자부하며 통증이 가라앉길 기다렸다.하지만 앞서 걸린 몸살감기가 심해지면서 기침이 나올 때마다 허리 통증을 제어할 수 없어늦은 밤에 병원으로 향했다.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바로 입원했다.병상에 가만히 누워 허옇게 넓은 천장만 바라보고 있으니 입원 전 북새통이던 세상이 고요해졌다.이 넓은 세상에 혼자가 된 것 같았고 .. 2026. 9. 25. 친절을 원해 평일 오전, 전철역이 종점인 마을버스 안은 사람들로 빼곡했다.학교나 회사에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종점까지 이동했고,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은 재래시장이나각종 병원이 몰려 있는 사거리에서 주로 내렸다.그래서인지 앞쪽 좌석에는 어르신들이,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뒷좌석에는 학생들이자리 잡는 익숙한 구도가 만들어지곤 했다.백발의 노인이 버스에 올랐을 때 버스 안은 포화 상태였다.왜소한 체구의 노인은 황금색 배지가 여러 개 달린 야구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그 아래로숱이 적은 머리칼이 빗질한 모양 그대로 뻗어 있었다.노인이 몇 걸음을 채 옮기기도 전에 앞쪽에 앉아 있던 또 다른 노인이 벌떡 일어섰다.“나 금방 내려요, 여기 앉으쇼”. 노인은 숫제 잡아끌듯 백발의 노인을 자리에 앉혔다. “일찍부터 어딜 가요? 나는 .. 2026. 9. 23. 인지적 항복 생성형 인공지능(AI) 덕분에 정보 검색이 쉬워지고 일 처리도 빨라졌다. 하지만 뭔가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바로 '생각하는 힘'이다.최근 '크림 전쟁'(1853~1856년)을 다룬 TV 역사 프로그램을 보다가 주요 격전이었던 발라클라바 전투의 자세한 내막이 궁금해졌다. AI가 일상화되기 전이었다면 인터넷 백과사전이나 관련 서적을 뒤져가며 당시 정세와 사건의 인과관계를 짚고, 전쟁사 속 의의를 스스로 정리했을 것이다. 이런 게 지적 희열을 느끼는 과정이었다.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 챗GPT 창을 열고 '발라클라바 전투의 의의와 크림 전쟁 전반에 미친 영향을 설명해줘'라고 프롬프트를 입력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과거였으면 흥미진진하게 머리를 굴려봤을 주제에 대해 AI는 1분도 안 돼 .. 2026. 9. 23. 죽음의 메시지 “잊지 마세요. 당신은 언젠가 죽습니다.” 하루에 다섯 번 휴대폰에 뜨는 문장이다. 그것도 유료 구독까지 해가며 받는다.죽음이라는 말을 강의에서도 논문에서도 숱하게 다뤘지만, 정작 죽음을 내 일처럼 떠올려본 적은 드물었다.앱을 내려받은 처음 며칠은 알림이 뜰 때마다 손이 멈칫했다. 한밤중에 울리는 전화처럼 가슴이 철렁했다. 이름부터 ‘죽다’라는 뜻의 영어 속어인 이 앱은 행복하려면 하루 다섯 번 죽음을 생각하라는부탄 속담에서 착안했다고 한다.알림을 열면 죽음에 관한 시인이나 철학자의 문장이 하나 나오고, 잠깐 숨을 고르라고 권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문장이 덜 낯설어졌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회의 중에도 알림은 왔다.처음처럼 손을 멈추지는 않는다.무뎌진 것이라기보다 마음 한구석에 죽음이 앉을 자리.. 2026. 9. 23. 속마음 나눌 사람 없다 ‘아프다’ ‘뜨겁다’ 같은 통증은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고 뇌가 보내는 신호다. 사회적 고립 상태에서 느끼는 외로움도 일종의 통증이다. 신체적 통증과 외로움은 뇌의 같은 부위에서 처리된다. 똘똘 뭉쳐 외부의 적과 싸우며 살아남은 인류에게 외로움은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진다. 문제는 만성적인 외로움이다. 목이 마르거나 손이 따가운 것과 같은 급성 외로움은 지나가지만, 만성 통증과 같은 외로움은 우리 몸에 독이 된다.▷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 ‘외로움에서 사회적 연결로’에서 외로움을 즉각 대응해야 할 공중보건 과제로 규정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6명 중 1명이 외로움을 경험하고, 연간 87만 명의 조기 사망에 영향을 미친다. 사망률뿐만 아니라 심장병, 뇌졸중, 우.. 2026. 9. 23. 둥글둥글하게 산다는 것 오래전 “위스키를 좀 안다”라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이야기를 나누다 궁금해서 물었다. 가장 좋은 위스키는 어떤 맛이냐고. 예상 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야 둥글둥글한 맛이죠.”둥글둥글한 맛이라니. 뜬금없는 말처럼 들려 다시 물었더니 한술 더 뜨는 답이 돌아왔다. “그냥 둥글둥글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드라마 ‘대장금’의 어린 장금이가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한 것”이라고 답한 것처럼 말이다. 숙성이 잘돼 혀에 착 감기는 부드러운 느낌을 말한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비싸지만 뭔가 다른 맛에 이끌려 가끔 위스키를 마시던 내게 그 표현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대개 회사에서 누구에게도 척지지 않고 이 사람에게도 잘하고 저 사람에게도 잘하며 오래 버티는 사람에게 쓰던 그런 표현이 이렇게도.. 2026. 9. 23. 젖꼭지가 크면 남편복이 있다? 친구 S가 얼마 전부터 동네 자치회관에서 ‘다이어트 댄스’ 강좌를 듣기 시작했다.주 5회 수업료가 3개월에 10만원 정도고 65세 넘은 분들은 무료란다.수강생은 대부분 오래 참여해 오신 60대 이상 터줏대감들인데 체력이 너무들 좋으셔서나이로는 막내인 S가 따라갈 수 없다고 한다. 젊음의 행진 ‘짝꿍들’ 멤버가 아니었을까 싶은 놀라운 실력자들도 있단다. 다들 열정도 엄청나서 연습하는 곡(’작품’이라 하신다고)마다 톤 앤 매너를 갖춘 의상을 차려입는 것은 기본이요,전공자들 발표회 못지않게 간절하게 임하신다고 했다.스승의 날도 엄청난데, 박사과정까지 하며 학교깨나 오래 다닌 S지만 이렇게까지 진심으로스승의 은혜에 감격하는 제자들은 처음 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 출석한 날 번호를 따이고 톡방에 초대된 후 .. 2026. 9. 23. 이게 다 문 때문이다 또 까먹었다. 욕실로 들어설 때만 해도 이유가 있었다. 계획이 다 있었다. 없어졌다.분명히 뭘 가지러 침실에서 나온 참이었다. 뭘 가지러 나왔는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나이가 드니까 자꾸 뭘 까먹는다. 냉장고를 열었는데 뭘 찾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다.냉장고에 뭐가 하도 많아 그럴 수도 있다. 혼자 살면 마음보다 냉장고 비우기가 더 힘들다.닭도 없는데 달걀이 너무 많다. 달걀 유통 기한은 매번 새로 검색한다. 문을 여는 순간 왜 기억이 나질 않을까? 찾아보니 ‘도어웨이 이펙트(Doorway Effect)’라는 게 있다.뭔가를 하려고 장소를 옮겼는데 문(門)을 통과하는 순간 목적을 잊는 현상이다.뇌가 문을 일종의 경계로 인식해서다. 뇌는 경험을 흐름으로 저장하지 않는다... 2026. 9. 23. 도심에 출몰한 '세로·늑구·상구' 3년 전 일이라 다들 잊었는지 모르겠다.다세대 주택 빽빽한 서울 구의동 골목길에서 택배 오토바이와 마주보고 있던 얼룩말.어린이대공원 울타리를 부수고 탈출했던 ‘세로’였다. 3시간 30분 동안 도심을 유유히 거닐었던 세로는마취총 7발을 맞고서야 생포됐다.부모를 여의고 반항기 겪다가 탈출했다는 사연이 알려지며 세로는 대중의 연민을 샀다. ▶지난 봄의 주인공은 ‘늑구’였다.대전 동물원을 탈출한 녀석은 관리번호에 따라 늑구로 불리며 9일 동안 도심 야산을 누볐다.AI 합성사진 탓에 소방관들은 엉뚱한 곳에서 허둥지둥했다. 가히 신드롬 수준이었다.온라인에는 AI로 만든 ‘늑구 대전마라톤’ ‘늑구 시티투어’ ‘늑구 탈출로 트래킹’ 이미지가 확산됐다.대전의 한 빵집은 ‘늑구빵’을 내놓았고, 무사 생포 뒤 전광판에는 “.. 2026. 9. 23. 달방 / 성윤석 달방 / 성윤석 사랑에서도 나 설움 밖에 챙긴 게 없어월세 같은 세월에 밀려달방에서마저 달만 들고 나왔다네월영동 반월동 완월동 신월동 두월동달방들이 모여 있는 골목을 지나나 바다에 다다르면천막 포차 꺼진 백열구에 내 달을 넣어밤마다 물결을 타고 넘고 싶었다네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헤드셋을 건 채바다로 질주한 생도 있었다지 아마나 어두워진 채, 떠나온 달방을 보고 있다네밤마다 물결 밤마다 물결 물이 결을 세워 솟아오를 때 2026. 9. 22. 이전 1 2 3 4 ··· 20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