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458 청약통장 헛된 꿈 1977년 3월 서울 여의도 목화아파트 분양에서 한 복부인이 시동생 등 주변 사람 이름을 빌려100건의 청약을 넣었다. 잠실의 한 아파트는 입주 전 주인이 15번 바뀌기도 했다.정부는 그해 8월 무주택자에게 국민주택을 우선공급하는 청약제도를 만들고, 이듬해 민간 아파트에도 적용했다.무주택자를 골라 돈 대신 순서대로 줄을 세우는 것이 우리 청약 통장의 출발이었다. ▶세계적으로 드문 청약 통장 제도는 고도성장기 한국 경제의 숨은 엔진이었다.집 지을 돈이 부족했던 국가는 국민이 매달 붓는 쌈짓돈을 모아 주택 건설 자금으로 썼고,정부는 당첨자에게 시세 차익을 안겨줬다.가난한 나라가 국민의 저축과 기다림을 밑천 삼아 아파트를 지어 올린 셈이다.취직하고 결혼하면 통장부터 만들던 시절이었다. 십여 년을 꼬박꼬박 부어.. 2026. 10. 8. 적막한 숲속에 평생 묶인 '몽몽이'…처음 풀어준 날 죽었다 제주서 '1m의 삶' 밭지킴견 산책해주는 유재연 소설가…"개들 세상은 사람이 넓혀주는 만큼" 지난 5월, 소설가 유재연씨가 제주 숲길을 운전할 때였다. 차창 밖 숲에 무언가 허연 게 보였다.나무 밑에 하얀 개가 묶여 있었다. 근처에 주인이 있었다. 60대 남성이었다.유씨가 다가가 만져보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주인이 "안 됩니다. 가세요"라고 거절했다.개는 배가 불룩했다. 어딘가 아픈 게 분명했다. 신경이 쓰였다. 컴컴한 밤, 불빛 하나 없는 숲을 유씨가 다시 찾았다. 후레쉬 불빛으로 개를 비추었고 눈을 마주쳤다.고독과 두려움에 짓눌린 눈이었다.군고구마와 개껌을 들고 열흘 동안 밤마다 그 개를 찾았다. 개는 순순히 받아먹었다.머릴 쓰다듬자 얼어붙었다. 유씨는 개에게 이름도 지어 주었다. '몽몽이'라고.. 2026. 10. 5. 내가 모르는 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들쥐’는 3년간 은둔생활을 하다 하루아침에 신분을 빼앗긴 소설가 제문재(류준열 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름도 얼굴도 똑같은 누군가는 바깥세상에서 문재의 행세를 하며 돈, 인간관계, 소설가라는 직업까지 그의 삶을 통째로 훔쳐간다. 빈털터리가 돼 집에서 쫓겨난 문재는 그제야 자신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깨닫고 사채업자 노자(설경구 분)와 함께 의문의 존재를 쫓는다. 매회 궁금증을 자아내는 긴박한 추적극은 지난 8월 말 공개된 지 2주 만에 전세계 넷플릭스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본 비영어 쇼 부문 1위를 차지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서사의 큰 줄기는 인생을 빼앗아간 누군가를 향한 복수이지만,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키워드는 ‘진짜’와 ‘가짜’다. 손톱을 먹은 들쥐.. 2026. 10. 3. 알고 있다는 착각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올해 공개된 한 논문에서 흥미로운 용어를 발견했다.‘LLM 착각’(LLM Fallacy)이다.‘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아 만든 결과물을 자신의 독립적인 능력과 역량으로 잘못 귀인(착각)하는인지적 오류’를 지칭하는 용어다.쉽게 설명하면 AI의 도움으로 잘 만들어진 코드나 글, 산출물을 보며 자신의 능력을 실제보다과대평가하는 현상이다. 기존이라면 전문성이 필요했던 일을 AI가 척척 해내고 인간과 AI의 상호작용이자연스러워지자, 어디까지가 내 능력이고 어디부터가 도구의 능력인지 경계가 흐려지면서 제안된 개념이다. AI의 적절한 활용은 인간 능력의 증강으로도 볼 수 있지만 문제는 AI가 사라졌을 때다.AI가 사라지는 순간, 능력도 함께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AI를 활용해 자연스러운 비.. 2026. 10. 3. 집요한 새치기 사상의 다양한 갈래가 사라지고 하나의 맥락만 남은 시기가 중국 한무제(漢武帝) 때다.오로지 유가(儒家)만을 떠받들며 다른 유파를 잠재웠던 독존유술(獨尊儒術)이 펼쳐졌다.그로써 유가의 창시자인 공자(孔子)는 이후 중국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으뜸 아이콘으로자리를 잡는다.비록 사회주의 중국이 들어선 후 한때 그의 정신세계를 집요하게 공격하는 ‘비공(批孔)’이라는흐름도 생겨났지만 공자는 아직 중국인의 정신적인 명분과 그 외형을 포장하는 데 가장 유용한 상징이다. 그러나 공자 호칭 속 ‘공’이라는 글자는 출발점으로 따지면 그저 ‘틈’ ‘구멍’ ‘사이’ 등의 뜻이다.처음 글자꼴은 갓난아기의 두개골이 다 여물지 않아 연한 막으로 만져지는 구멍, 즉 천문(泉門)을가리켰다고 보는 풀이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글자로.. 2026. 10. 2. 시진핑 간판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는 문화는 동서양 모두 일찌감치 시작됐다.서양 윤리 규범의 원형이라 할 십계명부터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고 했다.동양에선 피휘(避諱) 문화로 나타났다. ‘왕이나 성인·조상의 이름을 함부로 쓰지 않고 피한다’는 뜻이다.이름 대신 호나 자로 서로를 부르고 부모 이름을 말할 때 “홍, 길자 동자이십니다”라 하는예법도 넓은 의미의 피휘다. ▶근대 이전 피휘가 가장 엄격하게 적용된 곳이 왕실이다.부르봉 왕조 폐지 혁명 이전 프랑스에선 왕가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부르봉을 이름으로 쓰지 못하게법으로 금했다. 공화파가 루이16세를 단두대에 보내며 왕명인 ‘루이 드 부르봉’을 ‘루이 카페’로바꾼 것도 신성한 이름으로 여겨졌던 부르봉을 쓰는 이를 처형하기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조선.. 2026. 9. 30. 왼손이 하는 일 왼손잡이다. 어려서는 짝배이라 불렸다.옛 경상도 사람들이 왼손잡이를 일컫던 애칭이다. 아니다. 멸칭이다.아니다. 경상도 말은 애칭과 멸칭을 구분하기가 좀 힘들다.친할수록 멸칭을 즐겨 쓰는 문화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거기는 친하면 다 문디다. 사랑하면 문디 가스나다. 초등학교 들어가자 오른손 쓰는 법을 배워야 했다.1980년대 선생들은 왼손잡이를 고칠 의무라도 있는 것처럼 굴었다. 왼손으로 글을 쓰면 등을 후려쳤다.5공 시절에는 못 하면 일단 때렸다. 때리면 고치는 시늉은 해야 한다.고칠 수 없는 게 있었다. 생존과 관련된 행동이다. 밥 먹는 손은 고칠 수가 없었다. 지금도 식사 자리에서는 왼쪽 끝자리에 앉는다.옆 사람과 팔이 부딪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칼이나 가위질도 오른손으로 할 수 없다.섬세함이 필요.. 2026. 9. 30. 꼰대 눈물샘 폭발시킨 '인턴' 추석 연휴 1일차에 본 영화암살자(들).. 괄호안에 "들"을 포함시킨 이유는 저격범 외에 또 다른 공범이 있을 수 있다는영화적인 상상력.. (실제로도 아직까지 미스터리)1974년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언론사 기사까지 통제하던 그 시절의설정과 치열한 극 전개가 흥미로움.. 2일차에 본 영화세상 믿을 수 없는게 인간의 마음.. 형만한 아우가 없다고 했던가..본편에 이은 후속작들을 모두 보았지만.. 이 영화도 뭐 그닥.. 그렇다고 재미없단 얘기는 아니고그냥 킬링 타임용으로 적당.. 3일차는 패스하려다 본 영화3일 연속으로 영화를 보는게 별로 땡기지는 않았고..2015년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한 동명의 영화 '인턴'을 보았기 때문에 별다른 기대가 없었는데,웬걸.. 실제로는 나와 동갑내기 배.. 2026. 9. 26. 일년 넘게 밥을 같이 먹은 짝꿍이 돌연 사라졌다 거실 소파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는데 까치 한 쌍과 멥새 두 마리가 솔가지 사이를 휘젓고 다닌다. 자세히 보려고 일어나니 낌새를 알아챈 놈들이 총알같이 날아가 버린다. 혹시나 다시 오려나 하고 식빵을 뜯어 창문턱에 뿌려놓고 다음 날 보니 흔적도 없다.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다고 소문이 났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녀석들 덕에 창밖 풍경에 생기가 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새와 좋은 관계를 틀 때는 아니다. 당장 이웃과 친분을 쌓아가는 게 시급하다. 성격상 나는 사람들과 마주칠 때마다 번번이 인사하기가 버겁다.반면 밥을 같이 먹는 내 짝꿍은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이곳에 들어왔는데도 친화력이 남달라서아무하고나 잘 어울린다. 체중이 32kg에 불과한 약골 중 약골인데도 그녀는 포켓볼의 고수이고탁구 동호회 회.. 2026. 9. 25. 온몸 암 번진 80대 경비원의 선택 "5살 꼬맹이가 날 찾을텐데..." 온몸 암 번진 80대 경비원의 선택 마르고 수척한 고령의 남성이 응급실로 왔다. 병원을 오래 다녔던 것 같은 외양이었지만 기록은 전혀 없었다.딸과 함께 온 그는 숨이 차다고 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에게 땀내가 풍겨왔다.최근에 증상이 시작되었다는 점이 뭔가 이상해서 그에게 물었다. “정말로 앓던 병이 없습니까?” “병원에 안 다녔습니다. 다만, 배에서 뭔가 만져진 지는 한참 되었습니다.” 그의 배를 더듬었다. 단단하고 울퉁불퉁한 종괴가 만져졌다. 숨이 찬 증상과 연결해보면최악의 진단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에게 재차 물었다. “살이 빠지지 않았습니까?” “최근에 살은 좀 많이 빠졌습니다.” “이게 만져졌을 때 병원에 올 생각을 안 하셨습니까?” “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2026. 9. 25. 허리 통증으로 입원한 날들이 준 뜻밖의 선물 악! 밥 잘 먹고 의자에서 일어나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선수 시절에도 허리 통증을 많이 겪어봤지만 이번처럼 기분이 이상하게 삐끗하기는 처음이다. 통증이 심해 의자나 침대에서 일어나 한걸음 내디디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다. 모든 근육이 동원되는 움직임을 시작하기 위해 동작의 시작점과 끝점까지 계산해 조심조심 움직여야 했으니까. 일상생활이 많이 불편했지만 ‘나는 통증 관리에 베테랑이지’ 자부하며 통증이 가라앉길 기다렸다.하지만 앞서 걸린 몸살감기가 심해지면서 기침이 나올 때마다 허리 통증을 제어할 수 없어늦은 밤에 병원으로 향했다.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바로 입원했다.병상에 가만히 누워 허옇게 넓은 천장만 바라보고 있으니 입원 전 북새통이던 세상이 고요해졌다.이 넓은 세상에 혼자가 된 것 같았고 .. 2026. 9. 25. 친절을 원해 평일 오전, 전철역이 종점인 마을버스 안은 사람들로 빼곡했다.학교나 회사에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종점까지 이동했고,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은 재래시장이나각종 병원이 몰려 있는 사거리에서 주로 내렸다.그래서인지 앞쪽 좌석에는 어르신들이,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뒷좌석에는 학생들이자리 잡는 익숙한 구도가 만들어지곤 했다.백발의 노인이 버스에 올랐을 때 버스 안은 포화 상태였다.왜소한 체구의 노인은 황금색 배지가 여러 개 달린 야구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그 아래로숱이 적은 머리칼이 빗질한 모양 그대로 뻗어 있었다.노인이 몇 걸음을 채 옮기기도 전에 앞쪽에 앉아 있던 또 다른 노인이 벌떡 일어섰다.“나 금방 내려요, 여기 앉으쇼”. 노인은 숫제 잡아끌듯 백발의 노인을 자리에 앉혔다. “일찍부터 어딜 가요? 나는 .. 2026. 9. 23. 이전 1 2 3 4 ··· 20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