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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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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을 높여주는 문화가 그립다 “온 세상이 내 집인 것처럼 느껴진다.”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전생을 바친 로자 룩셈부르크가 인생의 가장 힘든 시간을 견디며 한 말이다.더없이 힘든 불행의 정점에서 죽음을 눈앞에 둔 자의 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온유하고 관대하다.그녀의 핏속엔 디아스포라의 정서가 조금은 존재했을 텐데도, 죽음을 눈앞에 두고 온 세상을 내 집처럼 느꼈다. 작은 키에 평생 한쪽 다리를 절며 살았던 ‘혁명의 불꽃’ 로자는, 사실 내가 아이디나 닉네임으로차용하고 싶었다. 그런데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한 스마트한 남성이 일찍부터 그 이름으로 활발하게활동하고 있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하지만 어느 모로 보나 작은 키에 한 성질 하는 내가 그보다는 로자에 가까울 테다. 언제부턴가 나는 이성적이라는 말을 할 때면 멈칫거리게 된다... 2026. 9. 3.
예쁜말 학교 한 아이가 겨울에 손이 시려 호호 불면서 한마디.“혀는 참 좋겠다. 이리 추운데 입속에 있잖아. 춥다는 게 뭔지도 모를걸?”혀가 풀려 아무 말이나 조잘조잘. 혀가 얼었단 소린 들어보지 못했어.‘오구리 도에이’란 스님의 책을 봤는데, 말조심에 관한 계율을 죽 정리했더구먼.“말수가 많으면 뱉었던 말이 나를 날름 잡아먹는다. 말이 갈피 없이 장황하고 길면 신뢰를 잃게 된다.자기 자랑, 집안 자랑을 하는 건 ‘나는 속물이요~’ 하는 자해다.남이 말하는 중간에 끼어드는 짓처럼 무례한 게 없다.자기도 모르면서 남을 가르치고 있으면 길 가던 개가 듣다가 웃고 지나간다.슬픈 사람 앞에서 웃으며 노래하면 그대로 하늘이 되갚아줄 것이다.지인의 사생활을 떠벌리고 다니는 자처럼 야비한 인간도 없다.”이래저래 계율이 셀 수도 .. 2026. 9. 3.
돈값 못하는 것들 침대를 잘 못 샀다. 좋은 침대다. 비싼 침대다. 메모리폼 침대다.비싼 건 대체로 좋은 편이다. 돈값 한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돈값 못하는 건 물건은 아니다. 사람이다. 정치인이 대표적이다. 내 침대는 돈값을 했다. 나는 목 디스크가 있다. 기자 출신 고질병이다.앉아서 수십 년 글을 쓰다 보면 당연히 척추에 문제가 생긴다.요즘 보험사기 의혹을 받는 병원에 돈을 꽤 갖다 바쳤다. 교통사고 ‘나이롱 환자’가 많았다.나는 나이롱 환자가 아니라 낫지 않았다. 메모리폼 베개를 샀다. 몇 달 썼더니 통증이 줄었다.베개가 이 정도라면 침대는 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메모리폼 침대를 샀다.메모리폼을 홍보하려는 것은 아니다. 모든 물건에는 장단점이 있다.비싼 것도 단점은 있다. 정치인처럼 말이다. 메모리폼 침대.. 2026. 9. 2.
확실한 것은 죽음뿐 자신을 귀족이자 치안 판사라고 믿는 술 취한 구두수선공은 “내가 당신 부인인 것은 확실하다”고 하는 아내에게 말한다. “이 여자야, 세상에서 확실하다고 할 수 있는 건 죽음과 세금뿐이야.”소동극 『프레스턴의 구두수선공』(1716)에 나오는 대사다. 영국 배우 겸 작가 크리스토퍼 블록은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거의 그대로 베낀 이 작품에 18세기 초 유행어를 쏟아부었다. 73년 뒤 벤저민 프랭클린은 친구에게 쓴 편지에 막 수립된 미국 헌법 체제가 오래갈 것 같다고 낙관하면서도 “물론 세상에서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죽음과 세금밖에 없다”고 재치 있게 덧붙인다.이 오래된 유행어가 프랭클린이 만든 말로 아직 인용되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납세자 감정은 같기 때문이다.죽음만큼 피하고 싶지만 .. 2026. 9. 1.
터널 속 바다 혹등고래가 노니는 터널형 수족관인가요? 아닙니다. 옛 철도 터널을 가득 채운 미디어아트입니다. 마치 바닷속을 걷는 듯한 풍경이네요.―경기 남양주 빛터널공원에서출처 : 동아일보 아래 사진들은 부산 해저터널 속 풍경입니다..해저터널을 이렇게 걸을 수도 있군요.. 인간의 기술력이 놀랍기만 합니다.. 2026. 9. 1.
연필을 입에 물고 소리 내어 읽는다 거울 앞에 서는 것이 점점 두려워진다.얼굴에는 주름이 깊어졌고, 불쑥 나온 배를 자꾸만 옷으로 가리게 되는 쉰 중반의 중년 아저씨가 서 있다.손에 쥔 휴대폰은 무심할 정도로 고요하다. 캐스팅 연락이 뜸해진 지 오래다.처음엔 ‘좀 쉬어 가나 보다’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속에는 공포가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었다. ‘이제 내 배우 인생은 끝난 걸까? 세상은 나를 잊은 걸까?’ 동료들이 화려한 제작 발표회 조명 아래 서는 모습을 TV로 보며, 나는 거울 속의 나에게 묻는다.“너, 아직 배우 맞니?” 거울 속 아저씨는 대답이 없다. 배우는 누군가 불러줘야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직업이다.지금의 나는 배우라는 정체성이 조금씩 희미해지고, ‘연예인이었던 아저씨’라는 쓸쓸한 명함만 남은 것 같았다.하지만.. 2026. 9. 1.
듣기 좋은 말의 값 조언과 아첨의 차이는 무엇일까?2세기 초,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저술가인 플루타르코스는 에세이 한 편을 썼다.글의 내용은 ‘아첨꾼과 친구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였다. 플루타르코스가 내린 처방은 단순했다.진정한 친구는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지만, 아첨꾼은 달콤한 말로 상대방을 망친다는 것이었다.친구는 때때로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아첨꾼은 언제나 우리를 기쁘게 하기에 늘 우리를 기쁘게하는 자를 경계하라는 조언이었다. 유용한 조언이었지만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조언은 아니었다.권력이나 부를 가진 사람에겐 경계해야 할 아첨꾼이 많았지만,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은 대체로 자신에게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아첨으로 인한 위험은 소수 권력자에게 국한됐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듣기 좋은.. 2026. 9. 1.
‘1+2 메가’ 묶음 상품 3대 메가프로젝트의 속도전이 시작됐다.메가 특구 특별법이 준비되고 미래대응기금이 발표됐으며, 7대 시드 프로젝트도 육성하겠다고 한다.대통령의 표현처럼, 속도전을 넘어서 ‘전격전’의 형세로 정신없이 이어지는 후속 대책 발표를 보면이 프로젝트의 적절성을 논의하기도 전에 3대 메가프로젝트 버스는 이미 문을 닫고 달리기 시작한 듯하다.그러나, 적어도 다음 정거장에 설 때마다 최소한 우리는 이 버스의 노선과 목적지,그리고 승객을 확인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그저 인공지능(AI) 경제의 물결에서 뒤처져서는 안 되며, ‘초격차’ 대한민국을 만들 둘도 없는 기회라는설명에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3대 메가프로젝트는 AI라는 우산 아래 묶여 나오긴 했지만 동등한 규모와성격의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 2026. 9. 1.
빌려온 영광 최근 한 연예인이 ‘4대째 의사 가문’이라는 집안 내력을 공개하면서 뜻밖의 논란에 휩싸였다.가문의 화려한 이력이 알려지자 증조부의 일제강점기 행적이 재조명돼 역사적·도덕적 검증의 대상이 됐다.이 사건은 신분제가 폐지된 오늘날에도 가문과 배경이 사회적 권위로 작용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가문의 명성을 빌려 자신을 높이려는 욕망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시골 산천의 묘역을 지나다 보면 ‘가선대부’(종2품)나 ‘통정대부’(정3품) 같은 관직명이 새겨진 묘비가 많다.그런데 벼슬의 높이가 능력이나 공적과 비례했던 것은 아니다.재정이 어려워지면서 돈을 받고 관직을 팔았던 ‘공명첩’이 성행했고, 허울뿐인 벼슬을 족보에 올려‘나도 양반’이라 내세운 신흥 부유층도 적지 않았다. 어린 시절 장례식장에서도 이런 모습을 .. 2026. 8. 31.
비어 있어야 들어온다 “머리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한 곳이지, 붙잡아 두기 위한 곳이 아니다.”―데이비드 앨런 ‘쏟아지는 일 완벽하게 해내는 법’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역할을 오간다. 집에서는 남편이자 아빠이고, 일터에서는 직장인이며, 그 사이에 나 개인의 일도 있다. 역할이 늘어난 만큼 챙겨야 할 것도 늘어난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미 하루가 시작된다. 오전 회의 자료, 어제 답하지 못한 메시지, 이번 주까지라던 아이 학원 상담 신청, 다음 달 만기라는 자동차보험. 집에 돌아와도 그 목록은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아이가 말을 거는데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다. 일을 그르치는 것은 일의 양이 아니다. 처리하지 못한 것을 머리에 이고 있으면, 정작 판단해야 할 순간에 머리가 비어 있지 않다. 경영 컨설턴트인 앨런은 다섯 단계를 제.. 2026. 8. 31.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 문학작품을 번역하다 보면 종종 죽은 작가들이 꿈에 나타난다.제일 많이 찾아온 건 다자이 오사무. 전집 번역할 때, 자다가 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면 광목 기모노 차림으로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은 그가 나를 보며 희미하게 웃는다.반가운 마음에 벌떡 일어나 낮에 번역하며 궁금했던 걸 묻고는 했다. 사이토 마리코 번역가를 만나 그 얘길 했더니.“왜 박완서는 내 꿈에 찾아오지 않을까요? 나도 정말 힘든데.”말맛이 다채로운 박완서야말로 번역가의 꿈에 와주면 좋을 텐데 하다가 문득 든 생각.아, 박완서는 다자이처럼 자기 폐부를 발가벗겨 글을 쓴 작가는 아니지.그러고 보면 내 꿈에 나온 다른 작가도 미시마 유키오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처럼 자기 얘기를 쓰는사소설 계열이다. 작품 속 작가의 환영과 사투를 벌이다 보니 그들이 내.. 2026. 8. 31.
해녀 '물마중'처럼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 해녀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언제일까요.깊은 바닷속에서 숨이 모자랄 때? 드센 조류를 만났을 때? 큰 파도가 덮쳤을 때?저는 제주가 고향이고, 몇 년 전부터 제주와 육지를 오가는 생활을 이어오고 있습니다.강연과 방송으로 정신없이 돌아가는 도돌이표 같은 삶에 중간중간 쉼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들었기 때문입니다. 쉬는 법을 모르는 저에게 스스로 내린 처방이었습니다. 제주에서 생활하다 보면 ‘해녀 체험’을 하러 온 관광객들을 종종 봅니다.체험비를 내고 잠수복을 입은 뒤 바다에 들어가 뿔소라와 보말을 잡고, 운이 좋으면 전복도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주의 여행자가 아니었습니다.고향에 다시 뿌리를 내리는 중이었고, 제대로 된 ‘물질’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제주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누구나 해녀의 바다에 들어갈.. 2026.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