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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우정은 왜 그렇게 어려운가

by maverick8000 2024. 4. 22.

 

 

인터넷 뉴스에 나는 축의금을 이만큼 했는데 돌아온 축의금은 요만큼이라 고민 중이라는

기사가 가끔 눈에 띈다. 기사 밑에는 ‘손절이 답’이라는 댓글도 꽤 많다.

‘우정은 왜 그렇게 어려운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읽다가 우리가 친구라고 믿는 관계의

절반 정도만 두 사람 모두가 서로를 친구로 생각한다는 문장을 봤다.

생각보다 우정이 일방적이란 뜻이다.

우정에 대한 더 암울한 전망은 2009년 버거킹 광고에서도 보인다. 페이스북 친구를 끊으면

와퍼 세트를 준다는 광고를 보고 무려 23만명이 친구 관계를 끊은 것이다.

그러자 버거킹은 ‘우정은 강하다. 버거킹은 더 강하다!’는 대대적인 광고를 펼쳤다.

 

 

친구의 재능이 아까워 관계자에게 자기가 출연하는 작품에 친구를 추천한 남자가

술 취한 친구에게 “네가 나를 동료로 생각해 경쟁하려 들지 않고 만만히 보기 때문에

나를 옆에 두려는 거잖아!” 하는 말을 들었다면 어떻겠는가.

내 호의가 너의 상처로 둔갑한다면 말이다.

 

친구가 되기보다 어려운 건 친구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다.

좋은 관계란 오해와 이해, 화해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우정의 정의가 사람마다 다른 것도 큰 걸림돌이다. 비가 오면 함께 맞아주는 걸 우정이라

믿는 사람이 있는 반면, 우산 가게를 알려주거나 가지고 있는 우산을 빌려주는 게 낫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박찬욱 감독은 가훈 숙제를 내민 초등학생 딸에게 “아니면 말고!”를 써준 것으로 유명하다.

‘아니면 말고’에는 인간사 노력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뜻이 숨어있다.

우정도 마찬가지다. 손절이든 지속이든 힘써 보고 아니면 내려놔야 한다.

관계를 유지하며 계속 싸우기보다 보지 않는 쪽이 더 현명할 때도 있다.

관점에 따라 위기가 기회가 되는 것처럼 오랜 친구와 겪는 갈등이 오히려 어느 쪽이

진짜 내 편인지 가늠해주기도 한다.

또 종종 상처를 남기고 떠난 우정 덕분에 새롭게 다가오는 우정을 만나기도 한다.

계에는 유효기간이 있을까. 당연히 우정에도 시절 인연이 있다.

 

출처 : 조선일보 [백영옥 소설가]

 

 

축의금 만삼천원

 

10년 전 나의 결혼식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예식장 로비에 서서 형주를 찾았지만 끝내 형주는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형주 아내가 토막 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급히 올라왔다.

"고속도로가 너무 막혀서 여덟 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어쩌나, 예식이 다 끝나버렸네."

숨을 몰아쉬는 친구 아내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 왔어요. 죄송해요. 석민이 아빠가 이 편지 전해 드리라고 했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거렸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덮어쓰고 엄마의 등 위에서 아기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카 사과장사이기에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용서해 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굶어야 한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삼천원이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흙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 함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내겐 있었으니까.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편지를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기쁘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 들려 보낸다.

지난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 가서 먹어라.

친구여, 오늘은 너의 날이다.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해 다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해남에서 형주가"

 

 

편지와 함께 들어있던 만원짜리 한 장과 천원짜리 세 장.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한 형주가 거리에 서서 한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다.

나는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놈, 사과를 왜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깨물어 먹었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신랑이 눈물 흘리면 안 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 할 텐데.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가 마음 아파할까 봐, 엄마 등 위에 잠든 아가가 마음 아파할까 봐

나는 이를 꽉 물었다. 참아도 참아도 터져나오는 울음이었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었다.

사람들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가운데 서서….

 

 

형주는 지금 지방 읍내에서 서점을 하고 있다. 열 평도 안 되는 조그마한 서점이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이 편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무의자가 여덟 개다.

형주네 서점에서 내 책 저자 사인회를 하자고 했다.

버스를 타고 남으로 남으로 여덟 시간을 달렸다.

정오부터 밤 9시까지 사인회는 아홉 시간이나 계속됐다. 사인을 받은 사람은 일곱 명이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마음으로만 이야기했다.

"형주야, 나도 너처럼 감나무가 되고 싶었어.

살며시 웃으며 담장 너머로 손을 내미는 사랑 많은 감나무가 되고 싶었어."

 

 

이철환(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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