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서울 올림픽 관련 다큐를 봤다. 서울이 아니라 ‘쎄울’이었다.
“아 라 빌 드 쎄울!(à la ville de Séoul)!”
IOC 위원장 사마란치의 88올림픽 개최지 발표가 아직 귀에 선하다.
최신 드론으로 오륜기를 만드는 요즘, 하늘에서 다이빙하는 인간을 띄워 오륜기를 만든 장면을 보니
그 시절의 결기가 느껴졌다. 올림픽 하면 떠오르는 군가풍의 출정가 ‘이기자 대한건아’는 ‘이기자,
이겨야 한다!’는 가사를 무한 반복하며 ‘체력은 국력’이라는 표어가 유행하던 개발도상국 시절의
비장함을 풍겼다.
2024 파리 올림픽의 선전을 보며 떠오른 건 장미란 선수다.
경쟁자인 중국의 ‘무솽솽’ 선수와의 일화를 소개한 그녀는 금메달을 딴 2008년 베이징 올림픽보다,
2007년 세계 선수권이 자신의 역도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메달을 바라면 상대의 실수를 바라기 마련인데, 시합 전 준비 운동을 하는 무솽솽을 보며
문득 그녀는 모든 선수가 죽도록 노력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 경쟁자의 실패가 아니라 “너는 네 할 것을 해라. 나는 내가 준비한 것을 하겠다”는
새로운 다짐이 생겼다.
그러자 상대의 실수를 바라며 생겼던 긴장이 사라지고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시합이 끝나고도 가슴이 두근거린 건 단지 메달 때문이 아니었다.
성공처럼 보이는 실패도 있고 실패처럼 보이는 성공도 있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성공을 뛰어넘는 성장이었다. 어떤 경지에 오른 선수들은 ‘더 잘하겠다’가 아니라
‘연습하던 대로 하겠다’라는 특유의 태도가 있다.
이번 양궁 대표팀 선수들도 비슷한 말을 했다.
게임은 승자와 패자를 나눈다. 과거에는 은메달을 따고도 죄 지은 표정을 짓던 선수를 여럿 봤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최선을 다한 멋진 패배에는 아낌없이 박수 치는 일이 많아졌다.
이기는 올림픽에서, 즐기는 올림픽으로 게임의 법칙이 바뀐 것이다.
서구에 비해 실력이 모자라 투혼과 헝그리 정신을 유독 강조하던 시대를 지나온 황금 세대의
발랄한 자신감, 이 또한 우리 모두의 성장이다.
출처 : 조선일보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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