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詩와 글과 사랑

잠깐, 나는 로봇이 아닙니다

by maverick8000 2023. 6. 13.
 

인터넷 작업 하다 보면 불쑥 ‘I am not a robot(나는 로봇이 아닙니다)’이라는 문구가 튀어나와

앞길을 가로막을 때가 있다. 전문용어로 캡차(CAPCHA)라 하는데, 사용자가 인간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인증 시스템이다. 그 문구를 클릭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기계는 사용자가 클릭하는 움직임을 통해 진짜 인간인지를 감별하고, 동시에 데이터도 수집한다.

 

기묘한 세상이다. 너는 인간이냐 아니냐를 로봇이 내게 묻고 있다.

물론 누군가 꼭대기에서 만들어 조종하는 시스템이고, 그런 이유에서 빅 데이터 알고리즘 뒤에 숨은

‘감시 자본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크다. 인간이냐 아니냐를 묻는 장치는 인간이 정직하고 선한 의도의

시스템 사용자라는 전제를 깔고 있지만, 그 전제는 자가당착에 가깝다.

악의적 행위도, 비인간적 면모도 실은 인간의 것일 뿐, 기계는 인간이 아닌 까닭에 비인간적 일탈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자명한 논리 아닌가. 기계의 일탈은 오히려 그것이 인간적이고자 할 때 일어난다.

AI에 대한 두려움의 핵심이 여기 있다.

 

‘로봇’은 체코어 ‘로보타(robota·부역 노동)’에서 왔다.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K. Capek)의 공상 희곡 ‘R.U.R.’에 처음 등장한 말로, 원(源)슬라브어 어원이

‘노예’를 의미한다.

1920년에 쓴 이 희곡에서 차페크는 인간의 노예였던 로봇이 집단 반란을 일으켜 인류를 절멸시키고 마는

2000년대를 상상했다. ‘인간의 주인이 되고 싶다. 난 모든 걸 할 줄 안다’고 로봇 반란 대장이 외친다.

차페크의 로봇은 인간과 똑같은 외모와 능력을 지니되 인간적 ‘감정’이나 ‘혼’까지는 갖추지 못했고,

수명은 20년으로 제한되어 있다. 로봇을 생산하던 사람은 다 죽었기 때문에, 마지막 남은 인간 단 한 명이

남녀 로봇 한 쌍을 절개해 생성 원리를 알아낸 후 생산을 재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때 두 로봇이 서로 상대 대신 자기를 죽여달라고 나선다. 그들도 사랑을 알게 된 것이다.

 

돌연변이 로봇 덕분에 생명은 소멸하지 않으리란 100년 전 믿음이 무색하게도, 오늘의 인공 인간에게

사랑은 변칙적 사건이 아닌 듯하다. 그 얘기를 문학이 앞서 해나가고 있다.

첨단 디지털 테크놀로지부터 불교 철학까지 두루 섭렵한 현대 러시아 작가 빅토르 펠레빈(V. Pelevin)은

코로나 이전인 2017년에 화제작 ‘iPhuck(아이퍽)10′을 발간했다. 소설에서는 2000년대 말엽의 IT 자본주의

세계가 n차원의 스페이스에 걸쳐 종횡무진 펼쳐지는데, 너무 복잡하고 황당한 나머지 그 전에 내가 죽을 거란

사실이 다행스러울 정도다.

 

그것은 가상 현실과 실제 현실이 합쳐진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의 세계이다.

증강 현실에서는 AI와 인간의 구분이 없다. 언젠가 무서운 바이러스가 지구를 위협한 후 인간은 서로

접촉하기를 피하기에 이른다. 생명은 인공수정으로 탄생하고, 성적 쾌락은 iPhuck10과 같은 시뮬레이션

도구를 통해 증강된 현실로 충족된다. ‘황제’도 러시아 귀족의 최고 유전자와 소비에트 노멘클라투라(권력 계층)의

최강 유전자를 합쳐 만들며, 그가 죽으면 그의 클론이 대를 잇는다. 그러나 황제가 하는 일은 별로 없는 것 같고,

현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놀랍고도 기괴한 효율성으로 운영된다.

 

AI는 존재하지 않는 무형질의 알고리즘이면서, 증강 현실에서는 엄연한 존재이기도 하다.

‘무’인 동시에 ‘존재’인 그는 느끼고, 의식하고, 심지어 윤회한다. 인간과 다를 바 없다.

AI와 인간 둘은 서로 진정한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른가? 펠레빈의 AI는 이 문제를 생각한다.

인간이라면 연꽃 자세로 앉아 몰두해 마땅한 화두이기도 하다.

 

열쇠는 결국 인간 내면에 있다.

AI가 진화하여 인간에 근접할수록, 말하자면 ‘AI가 인간의 능력을 앞섰다’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다’ 같은

예측이 현실로 다가올수록 그 위협에 맞서 키워야 할 항체는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남게 하는가’(인간성 본질)에

대한 또렷한 자의식이다. 가령 AI는 나보다 훨씬 더 외국어를 잘 하고, 훨씬 더 많은 책의 데이터를 갖고 있고,

훨씬 더 빨리 그럴듯한 글을 써낼 것이다. 그러나 외국어를 스스로 번역할 때, 좋은 작품을 천천히 읽을 때,

오랜 시간 끙끙대며 문장 한 줄을 완성할 때 번져 나오는 내 내면의 기쁨, 감동, 깨달음은 알 수도,

흉내 낼 수도 없다. 그런 내면의 파동이 매 순간 오직 나만을 성장시키고 변화시키는 힘을 AI는 학습할 수 없을

것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AI도 무위와 무심의 경지만큼은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은 그런 순간을 위해 존재한다. 이것이 내 비장의 자의식이고, 이것이 나에게 회심의 미소를 짓게 한다.

나는 로봇이 아니다.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