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행하는 독서모임에서 참석자 분들에게 2001년의 셔틀버스 운행 금지법과 그 파급 효과에 대해서
설명한 적이 있다. 셔틀버스는 1980년대 백화점들이 운행한 것을 시작으로 1990년대 들어 대형마트 또한
참여하면서 더욱 확대되었는데 이로 인해 전통시장과 소상공인들의 불만이 높아졌다.
결국 이들은 셔틀버스 운행 금지에 적극 찬성하였고 셔틀버스 운행이 금지되면서 도심 외곽의 저렴한 용지에
자리 잡던 대형마트들이 도심으로 진출하게 된 파급효과를 낳게 된다.
이 이야기를 마친 후 '왜 소상공인들은 장기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셔틀버스 운행을 멈추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때 한 참석자 분께서 재미있는 답을 해주셨다.
당시 소상공인들이 느끼기에 매출이 감소하고 손님들이 잘 찾지 않게 된 것은 대형마트들이 등장하고 이들이
셔틀버스를 운행하면서 손님을 빼앗아 간 것 때문이므로 셔틀버스의 운행을 막아버리면 다시 손님들이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 소상공인들이 정말로 이런 생각을 했을지는 알 수 없다. 이런 생각 자체에 비웃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어떠한 문제점이 발생했을 때 당장 원인이 된 어떤 현상이 사라지면 과거처럼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흔한 일이다.
국내 코스메틱 업계가 한한령이 끝나면 다시 중국 매출이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국내 영화 업계가
팬데믹이 끝나면 관객들이 다시 극장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실제론 전혀 그러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들은 선형적으로 미래를 전망한다. A라는 상황에서 B라는 요인으로 인해 C라는 상황으로 변화한 경우를
생각해보자. 원인과 결과라는 선형적인 구조로 이해할 경우, B라는 원인으로 C라는 상황으로의 변화가
발생했으니 B라는 원인이 해결된다면 다시 A로 되돌아가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는다.
그래서 모두가 원인이 된 셔틀버스나 한한령이나 팬데믹이 해결되면 과거처럼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선형적 사고와 전망은 변화를 일으킨 큰 요인 한 가지에만 주목하고 다른 모든 것은 불변이라 가정한다는
취약점을 가진다. 실제로는 모든 요소들이 변화에 맞춰 적응하기 때문에 전망의 상황조건 자체가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다. 셔틀버스를 예로 들자면 셔틀버스가 사라진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대형마트로 가는 것을
그만두지는 않으며 대형마트도 출점 전략을 바꾸는 것으로 변화에 대응한다.
마찬가지로 팬데믹 기간 관객들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같은 2차 시장 소비를 늘리는 것으로 변화에
대응하기에 예전처럼 영화관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OTT 소비라는 새로운 옵션이 추가된 균형점에서
영화 매체를 소비한다.
이처럼 미래는 과거의 올드 노멀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요소에 맞춰 뉴노멀로 나아가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뉴노멀로의 진행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인간의 인지적 한계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과거로 되돌아가는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어떠한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과거로 되돌아갈 순 없다.
과거의 결과는 그 시대적 환경과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과거와 환경도, 맥락도, 요소도 다른 현재와 미래에선
그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현재 사회적 거대 이슈로 떠오른 저출산이나 저성장의 문제 또한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예전처럼 되돌아가기 위한 무언가를 찾는 것은 또 다른 셔틀버스 운행 금지법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누구도 과거로 돌아갈 순 없다. 우린 오직 뉴노멀로 나아갈 뿐이다.
김영준 / '골목의 전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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