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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달리기 위해 멈추고, 채우기 위해 비워야 한다

by maverick8000 2023. 7. 4.

 

농사를 지은 땅의 지력을 보존하기 위하여 쉬는 땅을 휴경지(休耕地)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인삼밭이 그렇다. 인삼을 재배하고 나면 몇 년은 휴경한다고 한다.

‘해거리’라는 말도 있다. 과실이 한 해에 많이 열리면 그다음 해에 결실량이 현격히 줄어드는

현상을 말하는데, 감나무, 대추나무, 밤나무처럼 우리가 아는 많은 나무가 해거리를 한다.

해거리는 정신없이 달리다가 천천히 한 해를 쉬는 ‘나무들의 안식년’인 셈이다.

 

하지만 과실을 수확해야 하는 농부 처지에선 수확량 감소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해거리를 방지하고자 이들이 하는 일이 ‘가지치기’다. 썩은 가지는 물론이고 복잡한

잔가지와 큰 가지를 ‘미리’ 잘라 병충해를 막고 성장을 좋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가지치기는 나무를 위해 인간이 해주는 ‘나무들의 디톡스’다.

 

‘해거리’와 ‘가지치기’는 ‘힘과 쉼’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양면의 지혜다.

더 빨리 달리기 위해 멈추고, 더 가득 채우기 위해 비우는 자연과 인간 모두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뛰느라 이마에 흐르던 땀이 눈가에 맺혀 흐르면 먼 곳에 있던 사람 눈엔 눈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땀과 눈물이 같은 성분으로 이루어졌다고 같은 의미일 수 있을까.

놓이는 위치와 자리에 따라 냄새나는 음식물 잔반도 귀한 퇴비가 된다.

 

힘과 쉼 역시 그렇다. 얼핏 정반대 성질처럼 보이지만 실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

힘을 빼고 천천히 멈춘 상태가 ‘쉼’이기 때문이다. 더 높은 성장을 위해 힘을 내고, 달리고 나면

반드시 힘을 빼야 한다.

이것이 해거리를 하는 감나무와 가지치기를 하는 성실한 농부에게 우리가 배워야 할 지혜다.

가지치기하는 농부의 마음은 지금 휑하게 잘린 텅 빈 가지에 있지 않다.

그들 눈은 더 많은 열매가 달린 미래의 나무를 본다.

열심히 노동한 후, 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천지창조 후 신 역시 “보기에 좋았다”를 외치며 하루를 쉬었다. 신에게조차 휴식은 중요했다.

 

출처 : 조선일보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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