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사를 지은 땅의 지력을 보존하기 위하여 쉬는 땅을 휴경지(休耕地)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인삼밭이 그렇다. 인삼을 재배하고 나면 몇 년은 휴경한다고 한다.
‘해거리’라는 말도 있다. 과실이 한 해에 많이 열리면 그다음 해에 결실량이 현격히 줄어드는
현상을 말하는데, 감나무, 대추나무, 밤나무처럼 우리가 아는 많은 나무가 해거리를 한다.
해거리는 정신없이 달리다가 천천히 한 해를 쉬는 ‘나무들의 안식년’인 셈이다.
하지만 과실을 수확해야 하는 농부 처지에선 수확량 감소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해거리를 방지하고자 이들이 하는 일이 ‘가지치기’다. 썩은 가지는 물론이고 복잡한
잔가지와 큰 가지를 ‘미리’ 잘라 병충해를 막고 성장을 좋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가지치기는 나무를 위해 인간이 해주는 ‘나무들의 디톡스’다.
‘해거리’와 ‘가지치기’는 ‘힘과 쉼’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양면의 지혜다.
더 빨리 달리기 위해 멈추고, 더 가득 채우기 위해 비우는 자연과 인간 모두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뛰느라 이마에 흐르던 땀이 눈가에 맺혀 흐르면 먼 곳에 있던 사람 눈엔 눈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땀과 눈물이 같은 성분으로 이루어졌다고 같은 의미일 수 있을까.
놓이는 위치와 자리에 따라 냄새나는 음식물 잔반도 귀한 퇴비가 된다.
힘과 쉼 역시 그렇다. 얼핏 정반대 성질처럼 보이지만 실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
힘을 빼고 천천히 멈춘 상태가 ‘쉼’이기 때문이다. 더 높은 성장을 위해 힘을 내고, 달리고 나면
반드시 힘을 빼야 한다.
이것이 해거리를 하는 감나무와 가지치기를 하는 성실한 농부에게 우리가 배워야 할 지혜다.
가지치기하는 농부의 마음은 지금 휑하게 잘린 텅 빈 가지에 있지 않다.
그들 눈은 더 많은 열매가 달린 미래의 나무를 본다.
열심히 노동한 후, 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천지창조 후 신 역시 “보기에 좋았다”를 외치며 하루를 쉬었다. 신에게조차 휴식은 중요했다.
출처 : 조선일보 [백영옥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