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관극장을 아시는지.
영화를 상영하는 장소가 1개 관(館)만 있는, 스크린이 하나 뿐인 극장을 말한다. 스크린이 여러개 있는
복합상영관을 일컫는 ‘멀티플렉스’라는 개념이 1990년대 중후반부터 들어오면서, 그것의 반대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지만 그 시절에는 그냥 극장, 영화관이었다.
지금이야 내 시간에 맞춰 상영관을 고르고 영화를 보면 그만이지만 그 때는 극장 상영시간에 내 시간을
맞추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하루에 상영되는 회차가 정해져 있는데다 엄청난 히트작이
아닌 다음에야 영화가 지역에서 머무는 기간이 기껏해야 일주일 남짓이었으니, 주말이면 극장 주변은
데이트족이나 영화를 사랑하는 시네필(Cinephile)들로 북적이기 일쑤였다.
그래서인지 극장 인근에는 유난히 분식집이나 빵집, 커피숍, 오락실, 납탄 사격장 등 먹거리, 즐길거리,
쉴거리가 널려 있었다. 그 곳들은 어렵게 극장표를 구하고 상영 시간을 맞추기 위해 시간을 때우는
이들이 애용하던 장소였다. 그러다보니 극장 입구부터 인도까지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을 목격하는
일은 일상 다반사였다.
그 당시 유명한 영화 잡지 ‘스크린’ 정도를 구독하는 정성이 있어야 그나마 어느정도 영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시절이니, 그런 ‘긴 줄’은 영화가 재미있는지 없는지를 판가름하는 훌륭한 ‘바로미터’ 역할을 하곤 했다.
영화를 보기 위해 사람이 몰려있는 그런 환경에서는 가끔 대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영화팬들이 가장 경계하는 영화 스포 사건이 그 것. “나 귀신이 보여요(I See Dead People)”라는
대사로 유명한 ‘식스 센스’가 가장 대표적이다. ‘유주얼 서스펙트’와 함께 최고의 반전영화로 꼽히는
식스 센스가 우리나라에 개봉(1999년) 됐을 때, 버스를 타고 가던 어떤 사람이 영화관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을 향해 “브루스 윌리스는 귀신이다”를 외쳐버린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객석에 앉게 된 사람들은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 버스 승객이 한 얘기가 무슨 의미인지를
금세 알아 차려버렸고, 김이 새버린 사이다 먹는 기분으로 영화를 봐야 했다는 전설같은 사건이다.
한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도 했던 단관극장은 항상 사람과의 만남, 헤어짐이 있는 곳으로, 그 곳을 스친
사람들 수 만큼의 에피소드 들이 켜켜이 쌓인 기억 저장소 같은 곳이다. 그 시절을 산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곳에서 만들었던 추억 한 움큼씩은 어렵지 않게 꺼내 들 수 있는…. 브루스 윌리스 사건처럼 말이다.
단관극장에 대한 추억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영화 간판이다.
디지털 실사 출력이 일반화 돼 있고, 극장 내부의 영화 포스터가 더 익숙한 요즘에는 생소하게 들릴 수 있지만
홍보수단이 변변치 않던 당시에는 극장 영업을 위한 필수 아이템이었다.
영화 간판 화가가 어엿한 직업으로 따로 있을 정도였다. 2,000석 가까운 객석을 보유한 대한극장, 국제극장 등
서울의 대형 단관극장에 내걸리는 영화 간판은 나름 전문성을 갖고 여러명이 분업을 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영화 스틸 컷과 거의 흡사한 모습으로 그려져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전국 동시 개봉이 가능한 지금과 달리 제작 완성된 영화를 처음으로 상영하는 영화관을 뜻하는
‘개봉관’을 거쳐 서울 변두리나 지역의 ‘재개봉관’ 을 지나고, 영화 두편을 연달아 상영하는 ‘동시상영관’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그 퀄리티는 급격히 무너지기 일쑤였다.
배우의 얼굴을 전혀 알아 볼 수 없는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상황이 자주 연출됐다.
주연배우를 알 수 없어도, 심지어 배우 이름이 틀려도 그땐 그렇게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 영화 상영 중간에
영사기에 걸어 놓은 필름이 끊겨도, 사람들은 진득하게 잘도 기다려줬다.
영화가 다시 상영되면 오히려 박수로 영사기사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그런 낭만이 있었다.
회차별로 별도로 예매를 받는 것도 아니어서, 극장 안 휴게소를 적당히 활용하면 얼마든지 본 영화를 또
볼 수 있었다. 이 시스템을 잘 활용해 아침에 할인해 주는 조조할인 영화를 보기 시작해, 마지막 상영회차까지
다 채우고 나오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엄청난 영화광들의 은신처 또는 이문세의 노래 가사처럼 마땅히 갈 곳 없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가 되어
준 곳도 단관극장이었다.
그러니 이런 저런 추억들이 방울 방울 가득한 극장이 문을 닫는 모습을 어떻게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원주시민들이 아카데미 극장을 지키려고 애를 쓰는 것도,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의 정상화를
위해 너도 나도 나서는 것도 효율과 합리에 가려진 꿈을, 추억을, 낭만을 더 이상 빼앗기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세상에 보내는 작은 신호가 아닐까 싶다.
그립다. 그 시절 그 극장들이.
출처 : 강원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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