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 먹어 푸른 입
입가에 몽고반점이 생겼네
배냇웃음이듯 푸르게 참 푸르게도 젖었네
난생처음 내가 난생(卵生)이 된 것 같네
집 뒤, 산밭에 저 혼자 열매 맺어 서 있는 나무가 건네주는
오디 한 움큼 따 입에 넣으면, 온통 잉크빛으로 물드는데
잉크빛으로 물들어, 폐허 같은 멍자국이 번져 흐르는데
그것을 보며, 어머, 아저씨 입가에 몽고반점이 생겼네! 하며 밝게 웃는
이웃집 아이의 말 한 마디, 몸 안 가득 잠실을 차렸는지
웃음이 누에처럼 스며 나와, 사각 또 사각 베어 먹은 자국
온몸에 푸른 신전(神殿)을 세우네
그렇게 말한 아이의 얼굴에도 온통 일식(日蝕)이어서
또 웃음이 저절로 즙이 되어 흘러내려
입 속이고 입술 주위고 다시 온통 폐허가 되는
흠뻑 젖은 두 손마저 즐거운, 그 즐거운 폐허가 되는
입 속의 푸른 멍자국, 몽고반점⸺.
그렇게 폐허가 되면 보이는 입, 아이 입.
오디 먹어 푸른 저 입.
김신용
'詩와 글과 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술한잔 / 정호승 (0) | 2024.12.13 |
---|---|
대설 / 김영삼 (0) | 2024.12.09 |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김용택 (0) | 2024.11.08 |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0) | 2024.11.06 |
가을날 / 김사인 (2) | 2024.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