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실 앞 텃밭에 씨를 뿌렸다. 벼와 보리는 길러봤지만, 밀은 처음이다.
‘금강밀’ ‘황금알밀’ ‘남도참밀’ ‘앉은키밀’에 호밀까지 다섯 품종을 각각 나눴다.
벼는 품종에 따라 수확량은 물론이고 줄기의 길이나 나락의 빛깔이 사뭇 달랐다.
다섯 종류 밀은 얼마나 비슷하고 다를지, 벌써 기대가 된다.
지난겨울 옥터성지 옆 텃밭에서 키운 보리도 멋있었다. 길눈이 수북하게 내린 밤, 시금치와 봄동은
눈에 덮였지만, 제일 바깥쪽 이랑에 심은 보리들은 꼿꼿하게 푸르렀다.
이 당당한 자태만으로도 보리를 키운 보람을 느꼈다.
보리 대신 밀을 택한 것은 장 프랑수아 밀레가 1850년에 그린 ‘씨 뿌리는 사람’ 때문이다.
빈센트 반 고흐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 이 작품은 밭일하는 농부의 소박하면서도 당당한 모습이 담겼다.
화면을 가득 채운 존재가 신이 아닌 인간이며, 인간 중에서도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이 아니라 농부다.
모자를 눌러 쓴 농부가 내딛는 오른발에는 주저함이 없다. 씨가 바람에 날리더라도 몸에 붙지 않을 만큼
오른팔을 옆으로 쭉 벌려 내렸다. 씨는 걸어가는 농부의 손놀림을 따라 밭으로 떨어진다.
농부는 씨가 제대로 흩뿌려지는지, 고개 돌려 확인하지 않는다.
보지 않더라도, 팔다리의 움직임만으로 충분히 씨의 위치를 예측할 수 있다.
그림 속 농부처럼 익숙하게 씨를 뿌리진 못했다.
팔을 사선으로 멀리 뻗으려 했지만, 자꾸 발 앞으로 모여들었다. 불안한 마음에 힐끔힐끔 쳐다본 탓이다.
들녘으로 맞바람까지 불어 씨들이 내 가슴을 치고 입안으로 들어왔다.
까치와 참새들이 한심하다는 듯 번갈아 울었다.
자세를 다시 잡고 천천히 팔을 뻗었다. 이번엔 아예 눈을 감다시피 했다.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팔다리의 균형 잡힌 움직임에만 집중했다. 손을 떠난 씨가 몸에 붙는 일은
다행히 없었다. 한 이랑을 끝까지 걸어간 뒤 돌아섰다. 원했던 자리에 씨들이 골고루 놓여 있었다.
적당히 흩어진 모양이 예쁘기까지 했다.
밀은 겨울을 어떻게 견딜까. 매서운 바람이 불 땐 무엇을 하고, 눈이 하염없이 내릴 땐 무엇을 할까.
하는 일 없이 그저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겨울을 나는 식물이라면 가지는 가지대로 줄기는
줄기대로 뿌리는 뿌리대로 살길을 도모한다.
느리다면 느린 이유가 있고 작다면 작은 이유가 있다.
오늘 뿌린 씨보다 밀밭을 처음 가꾸는 초보 농부가 더 큰 문제다. 춥다고 게으름 부리지 말고,
더 자주 텃밭에 와선 스스로 할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밀레는 씨 뿌리는 사람뿐 아니라, 밭일하다 종이 울리면 두 손을 모은 채 기도하는 사람과
밀을 수확한 후 이삭을 줍는 사람까지 두루 그렸다.
먼저 농사지은 이들의 구체적인 기록은, 글이든 그림이든 혹은 영상이든, 처음 씨를 뿌리는
이들에게 소중한 안내판이자 훈훈한 격려다.
다섯가지 밀을 내 문장으로 옮기는 늦가을과 겨울과 봄이겠다.
김탁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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