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군에게.
첫 직장은 어떤가요? '구별 짓기'가 조직의 속성인지라 J군의 다른 경력이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조금 걱정됩니다.
오늘은 독서에 대해 전하고자 합니다. 특히 여전히 '만짐의 매력'이 있는 종이책 읽기에 대한 겁니다.
직장생활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소설을 읽는 게 미안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던 것 같습니다.
노는 것 같다는 그런 느낌, 학업과는 거리가 멀다는 판단, 그런 이유였을 겁니다.
마흔 살 넘어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으로 기억합니다.
아주 드라이하게 줄거리를 따라가다가 방언하듯 눈물이 터졌습니다.
말하지 못한 사랑, 비뚤어진 운명에 대한 생각들이 머리와 가슴을 헤집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 시간을 '만들어' 읽었습니다.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을 접한 뒤에는
제 독서기록장 이름으로 정했습니다. 정극인의 상춘곡 한 구절처럼 꽃나무 가지 꺾어 술잔을 헤아리듯,
읽은 책에 번호를 붙여 기록했습니다. 1000번이 넘으면 나의 글을 쓸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책값이 비싸다고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한 끼 안 먹으면 한 권은 살 수 있습니다.
간헐적 단식을 하면 한 달에 대여섯 권입니다.
체코 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주인공은 집이라는 공간을 책에 양보합니다.
그래도 책을 읽는 시간 동안에는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고 '문장은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십'니다.
한동안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그러다 규칙을 정했습니다. 세 권에 한 권은 소설을 읽는다.
그중 절반은 고전으로 한다. 고전은 이탈로 칼비노가 지적한 것처럼 사람들이 보통 '다시' 읽고
있다고 말하지, '처음' 읽고 있다고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다지만 나이 들어 처음 읽으면 뭐 어떻습니까.
프랑스 사상가 모리스 블랑쇼가 '문학의 공간'에 적었듯 독서는 자유입니다.
맞이하고, 동의하고, "그렇다(Oui)"라고 말하는 자유입니다.
여러 책을 동시에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침에는 역사서, 점심 때 경제경영서, 저녁엔 소설,
자기 전에는 시집, 이런 식입니다.
기억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읽었는지 아닌지조차도 그렇습니다.
마침 진은영 시인이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에서 적어뒀어요.
"어느 날은 책장에서 언젠가 꼭 읽어야지 하고 마음먹었던 책을 문득 꺼내 펼쳐보고는 내가 좋아하는
펜으로 내가 좋아할 법한 문장에 밑줄이 쳐진 걸 보고 놀랄 때도 있다. 이 책을 언제 읽었더라?"
오에도 그랬죠, 노화는 슬프지 않지만 독서 기억이 흐려짐은 두렵고 괴롭다고.
예전에는 기억력을 탓했는데, 요즘에는 그냥 다시 읽습니다.
종종 예전 밑줄과는 다른 곳에 줄을 긋습니다. 기억력이라는 게 나이와 함께 약해지는 것이므로
저항하기보다는 천천히 수용하는 것이 낫겠다 싶습니다.
노안이라는 것도 작은 티를 보지 말고 큰 아름다움을 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언젠가 정재승 박사에게 물어봤습니다. 고스톱이 치매 예방에 좋은가.
그럴 리가 있겠나, 고스톱 잘 치는 치매 노인이 될 수는 있겠다.
고스톱 잘 치는 치매 늙은이보다는 읽은 책 또 읽는 치매 늙은이가 낫겠다 싶습니다.
이수명의 시 '날마다 더 멀리'는 이렇게 끝납니다.
"희망에 대해서 희망의 세월에 대해서 우리는 보잘것없는 약속을 지킨다. 생각은 조금도 해롭지 않다."
올겨울도 예년만큼 추울 거라고 하던데요, 추운 건 공기의 온도일 뿐 생각의 온도는 만짐의 기억을 더해
따뜻해질 수 있을 겁니다.
J군의 겨울이 더욱 따뜻하기를. 그리고 미리, 해피 크리스마스!
[김영태 전 코레일유통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