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에 감기 몸살로 몹시 앓았다. 주사를 맞고 온갖 약, 감기에 좋다는 음식을 먹었다.
어지간한 약속은 취소하고 쉬었지만 감기는 지긋지긋하게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새벽에 기침·가래가 멈추지 않아 일어났다가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엄마, 나 좀 낫게 해줘.”
내가 감기에 걸리면 내 이마를 짚어 열이 있는지 알아보던 엄마의 손, 배를 갈아 끓여 꿀을 타서
한 숟가락씩 먹여주시고 밤새 나를 품고 주무시며 “괜찮아, 곧 나을 거야”라고 말씀하셨던
엄마의 목소리가 간절히 그리웠다. 손자를 둔 할머니가 된 지금도 나는 엄마가 필요하다.
10년간 치매를 앓아 말년에 당신도 알아보지 못하셨지만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내게 미소 지으며 손을 잡아주셨다.
얼마 전 진서연 배우가 ‘세바시’란 강의 프로그램에서 ‘엄마적 사고’란 주제의 강의를 한 것을 봤다.
세 자매의 둘째로 태어난 그는 부모님이 바빠 정성껏 차린 따뜻한 밥을 먹은 기억도,
큰 관심도 못 받고 자랐다고 했다.
어느 날 자존감이 바닥을 쳤을 때 그는 ‘엄마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단다.
진짜 엄마가 아닌 이상적 엄마말이다.
내가 엄마라면 나한테 어떤 말을 했을까. 혹은 내게 어떤 선택이나 결정을 하길 바랐을까란
생각을 하는 것, 내가 나의 엄마가 돼 나를 잘 돌봐주는 것이 엄마적 사고란다.
사춘기·갱년기처럼 그 시기나 과정을 ‘엄마기’라고 명명하며 엄마처럼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자주
토닥여주고 자신을 존중해주면서 자존감도 높아지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고 진서연 배우는 밝혔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대 소아과 의사인 존 브래드쇼도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란 책에서
자신에게 이상적 보호자가 돼 본인을 재양육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느낀 가장 큰 상실감은 내 곁에 누구도 나보다 날 더 사랑하고 내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고 무엇보다 나의 작은 성취에 나보다 더 기뻐하는 존재가 없다는 거였다.
엄마는 늘 나를 응원하고 위로하고 축복해주셨다. 그게 그 어떤 유전자나 물질적 유산보다 더
날 단단하게 만들어준 힘이다.
그 덕분에 난 숱하게 상처받고 실패하고 두려움에 떨기도 했지만 폭풍우 속을 지나 집으로 돌아가
엄마 품에 안길 때의 온기, ‘괜찮아’라는 위로의 말로 다시 평정을 찾았다.
60대 중반인 지금, 내가 나의 엄마가 돼주려고 다짐한다.
엄마는 절대로 내가 나를 한심해하거나 방치하거나 궁상떨거나 징징거리는 것을 바라지
않으실 것이다.
내가 사과 하나라도 좋은 것을 먹고 잠옷도 깨끗하게 빨아 입고 수시로 얼굴 마사지를 해주며
스스로 존중하고 아끼는 모습을 볼 때 하늘에서도 미소를 지으실 게다.
또 무엇보다 엄마가 들려주셨을 때 위로를 얻고 자존감을 회복했던 말들, ‘애썼다’ ‘수고했다’
‘대견하다’ ‘잘했다’ ‘축하한다’란 말을 이제는 내가 나에게 해주고자 한다.
유인경 방송인
출처 : 농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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