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97년 2월 27일 맨해튼의 한 대형 서점 로비에 전시된 오늘 자 과학 전문지 ‘NATURE’를
보고 있다. 표지 단독 모델은 복제양(羊) ‘돌리(Dolly)’다.
돌리는 1996년 7월 5일 탄생했고, 1997년 2월 22일에 공식 발표되었지만, 대중에게는
오늘 피부에 와닿는 현실이 되었다.
‘NATURE’의 위상 때문이기도 하되, 요즘 같은 스마트폰과 요즘 같은 온라인 시스템들이
없던 시절이라 더 그렇다. 역사상 최초로 (정자와 난자 같은) 생식세포가 아닌,
(살과 뼈 같은) ‘체세포’를 이용해 한 생명체와 동일한 DNA를 가진 다른(?) 생명체를 복제해낸
결과가 바로 돌리다. 여기서 질문이 발생한다.
DNA가 똑같으면 똑같은 존재인가?
일란성 쌍둥이는 DNA가 똑같다. 하지만 지문(指紋)은 서로 다르다.
돌리의 탄생과 더불어 인간 복제에 대한 우려가 폭발했는데, 막상 29년이 지난 2025년에 둘러보면
의외로 그런 논란은 별로 없다. 물론 어딘가 은밀한 곳에서 누군가 인간을 복제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다만 아랍에미리트 왕자 천하제일 갑부 만수르 밑에서 황우석 박사가 낙타와 개 등을 복제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매머드 복제에도 관여한다는 소식이 있다.
한데, 넷플릭스 다큐에서 복제견을 죽은 반려견의 환생으로 여기고 냉동고에 넣어두었던
죽은 반려견의 사체를 뒤늦게 묻으며 복제견에게 “너의 첫 번째 몸을 장례 치르는 거야”라고 말하는
한 남자를 보는 심정은 좀 묘하다.
집착과 유물론의 끝판왕인 복제된 생명체는 물질적 환상은 넘어선 ‘착각 물질’이다.
DNA가 같다고 해서 영혼까지 같거나, 개 주인과 죽은 개가 함께 보냈던 시간까지 복제견에게
공유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죽음의 훼손과 슬픔의 왜곡이 좋은 일일까.
죽은 개의 복제견을 쓰다듬는 것보다, 꿈속에서 보고 깨어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는 게
더 완성(完成)이 아닐까?
나 자신과도 헤어질 준비를 하면서 사는 게 당연해야 지혜로운 인생이다.
이응준 시인/소설가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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