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힘들고 고단했던 무명 시절을 겪던 한 가수가 ‘나는 반딧불’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무명 시절에 약 5개월간 노숙한 적도 있다. 옥상에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환풍기 앞에
종이를 깔고 자고, 라디에이터가 켜진 화장실에서 눈을 붙이면서도 음악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반딧불’은 우연한 기회에 알려졌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소개된 그의 노래는 청취자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고, 그의 사연과
더불어 깊은 울림을 줬다. 노래는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가 그의 인생과 절묘하게 맞물리며
수많은 이에게 깊은 감동과 위로를 선사했다.
노랫말은 단순한 곡을 넘어 삶의 이야기이자 위로의 시가 됐다.
어떤 이들은 운이 좋았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운도 수많은 고통을 이겨낸 시간과 내면을
담아낸 진정성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의 음색은 특유의 거친 질감과 따뜻함을 동시에 지녀 진솔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목소리에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깊이가 있다.
노랫말 가운데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이라는 구절은 듣는 이들의 가슴을 적신다.
누구나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 믿었던 시절이 있다. 무언가가 틀림없이 될 수 있다고 믿고,
꿈을 향해 달릴 수 있다고 생각한 시절이 있다.
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차갑고, 넘기 어려울 것만 같은 벽은 자신을 벌레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후렴구는 말한다.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벌레라서 초라하기만한 것이 아니라 그런 벌레조차 작게나마 빛을 품고 살아간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사람들은 지금 빛나는 사람을 우러르며 동경한다.
무대 위에서 멋지게 노래하는 가수,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 등 찬란한 그의 현재를 보며 부러워한다.
그러나 그 화려한 비상 이전에는 초라하고 어두운 시간이 있다.
나비가 화려한 날개를 펴기까지는 애벌레로 땅바닥을 다니는 시절이 있었고, 매미가 높은 나뭇가지에서
맴맴 울기까진 땅속에서 7년이라는 고독한 시절을 버틴다.
나비는 고치 속에서 완전한 변태를 이루기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녹여내는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현재의 화려한 나비를 부러워할 뿐 멋진 날개를 갖기까지 기나긴 인고의 시절이
있었음을 잊는다.
조선 후기 문인 이옥은 ‘벌레 이야기(談蟲)’에서 날개로 날 수 있는 것은 모두 날개가 없어 날지 못하던
것이 변한 것이라고 말한다. 꾸물거리는 벌레를 본 사람들은 더러워하며 침을 뱉는다.
반면 아름다운 날개를 지닌 곤충을 보면 누구나 사랑하며 기둥을 더럽히고 옷깃을 스쳐도
싫어하지 않는다.
이에 이옥은 사람들이 저것은 박대하면서 이것은 사랑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이옥은 사람들의 모순된 시선을 비판하며, 벌레였던 시절의 고통과 기다림이 있었기에 나비의 날개가
존재한다는 진실을 들려주려 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에서 벌레였던 시절이 있다.
초라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시절에 괴로움과 외로움, 실패와 무력감으로 점철된 날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시절을 지나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지금의 나는 또 다른 변화를 위한 과정을 살아내는
존재가 된다. 그러니 벌레였던 시절을 잊지 말자.
그 시간 속에서 울며 배우고, 인내하며 성장했기에 나는 조금씩 빛날 준비를 해온 것이다.
아니, 어쩌면 지금의 나는 여전히 작고 초라한 반딧불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벌레인들 어떠리. 이미 나는 작은 빛을 품은 존재다.
그러니 지금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리라. 이것이 ‘나는 반딧불’이 전하는 아름다운 메시지다.
박수밀 고전학자·한양대 연구교수
[출처]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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