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나는 유명한 달리기 꼴찌였다. 단 한 번도 예외가 없었다.
2년 연속 담임을 맡았던 초등학교 6학년 선생님은 400m 달리기 시합에서 나를 30m쯤 앞서게 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6년 정도 학교를 같이 다니니 다들 알았던 것이다.
‘그래도 꼴찌는 쟤다.’
회사를 휴직하고 하루 백 보도 걷지 않는 날들을 보내다, 책장에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냈다.
자전적 에세이 형식을 띤 이 수필집은 실은 달리기 예찬집이다. 하루키는 33세부터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했다. 풀코스 마라톤만 25회 이상 나갔다. 그는 소설 쓰기를 육체 노동이라 봤고,
이를 꾸준히 해내기 위해선 달리기를 통해 신체와 정신을 단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올해로 76세가 된 그는 여전히 달리고 쓴다.
전문 러너도 훈련을 쉰다는 혹서기에 첫 달리기를 시작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1km를 제대로 뛸 수 없었다. 걷다 뛰다 반복하며 집 근처 3km를 겨우 한 바퀴 도는 데 40분이 걸렸다.
매일도 못했다. 그런데도 가을바람 부는 계절이 되니 갑자기 4km 뛰는 게 어렵지 않게 됐다.
운동의 이 정직함이 좋아서 세 계절을 달렸다.
10km를 일상적으로 뛰면서, 지난달 27일엔 첫 하프 마라톤 대회를 나갔다.
숱한 러닝 크루 속에 혼자 광화문을 출발해 서소문 고가를 오르고, 마포대교를 넘었다.
으레 하위권이 내 자리라 생각해 빨리 뛰는 사람에게 양보하며 달렸는데, 여의도를 거치고
양화대교 건너자 나를 제친 사람들을 하나둘 다시 지나가게 됐다.
상암동 도착하니 21.0975km. 시계를 보니 2시간 1분 38초였다.
전체 참가자 9823명 중 5570등, 여자 2305명 중 708등.
유치하지만 이걸 굳이 학교 다닐 때 같은 반 여자 수로 나눠봤다. 23명 중 7등.
6학년 담임 선생님이 보셨다면 얼마나 놀라셨을까.
인생이 달리기라면 단거리 잘하는 스프린터가 있고, 오래 뛰었을 때 빛을 발하는 마라토너가 있다.
배우 염혜란은 확실히 스프린터는 아닌 것 같다. 이젠 대부분 그 이름을 알 듯한 그는 오랫동안
‘아, 그 배우’였다.
2000년 연극 ‘최선생’으로 데뷔해 2003년 ‘살인의 추억’으로 스크린에 등장했지만, 대중 인지도는
낮았다.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로 대중에 눈도장 찍을 때가 2016년.
염혜란이 400m만 뛰고 포기했다면, ‘더 글로리’ 속 명랑한 현남과 ‘폭삭 속았수다’의 눈물 쏙 빼는
엄마 광례는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출발선에서 남들이 다 빠르게 뛰어갔더라도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장거리에선 느린 걸음이라도 쉬지 않고 달린 사람이 결국 해낸다.
편법과 꼼수는 통하지 않고, 묵묵히 쌓아 올린 지난날의 내 시간만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400m 만년 꼴찌도 조금 오래 달리기만 한다면 꼴찌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출처 : 조선일보 [카페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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