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내 생일 덕분에 이래저래 기분 좋은 날들이 이어진다.
지인들이 커피 쿠폰도 보내주고, 만나서 식사도 하고, 선물도 받으며 즐겁게 보낸다.
5월이 되면 갑자기 어깨가 축 처지고 만다. 카네이션을 드리고 싶어도 부모님이 하늘나라에
계시기 때문이다. 엄마 기일인 5월 10일은 매번 유별나게 쾌청했다.
엄마 덕분에 열두 달 중에서 5월 날씨가 가장 좋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를 잘 보내드리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지나치게 쾌적해 ‘더워지기 직전에 가실 일이지’라고
혼잣말을 하기까지 했다.
올 5월은 비도 많이 오고 여러 날 흐리기도 했지만, 그해 5월은 하늘이 바닷물을 가둔 듯 파랬다.
엄마 생각하며 올려다본 5월 하늘이 환장하게 아름다워 마음이 아려왔다.
너무 날씨가 좋아 더 아쉬웠고, 그래서 더 슬퍼 박진영이 만들고 수지와 정승환이 부른
‘대낮에 한 이별’을 줄곧 들었다.
‘햇살이 밝아서 햇살이 아주 따뜻해서/눈물이 말랐어 생각보단 아주 빨리/죽을 것 같아서
정말 숨도 못 쉬었었어/근데 햇살이 밝아서 햇살이 밝아서 괜찮았어’.
특히, 이 대목을 따라 부르다 보면 마음에 가득하던 습기가 서서히 말라 갔다.
연인과 이별한 이들을 위한 노래로, 엄마 잃은 중년 여성까지 위로하는 천재 박진영.
그가 만든 노래는 다 좋지만 ‘대낮에 한 이별’은 명곡 중의 명곡이 아닐 수 없다.
엄마가 가신 지 꽤 됐는데도 마음이 아파 햇살이 밝고 카네이션이 지천인 5월이 빨리
지나가길 바란다. 세월이 더 가면 괜찮겠지, 생각했지만 그럴 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
며칠 전 리모컨을 누르다가 C채널에서 80대 남성 두 분이 엄마 얘기를 하며 하염없이 우는 걸
보면서 내린 결론이다. ‘사랑하고 보고 싶고 그리운 어머니’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와 김의신 교수(미국 텍사스대 MD 앤더슨 암센터 종신교수)가 마주 앉아
1시간 동안 엄마 타령에다 눈물 바람을 했다.
김삼환 목사는 어릴 적 부엌에서 엄마가 가족들보다 먼저 퍼준 밥 얘기를 했고, 김의신 교수는
미국에 사는 자신에게 한국 음식을 보내온 엄마 얘기로 눈물지었다.
급기야 두 분이 ‘어머니의 마음’을 부르기까지 했다.
눈물 흘리며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라고
꿋꿋이 불렀다.
안 그래도 5월 끝물이라 엄마 생각에 마음이 울적한데 두 분이 내 눈물 버튼을 사정없이 눌러 버렸다.
엄마와의 이별이 슬픈 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준 분과의 작별’이기 때문이리라.
나 역시 부모님의 ‘순도 100% 정성’에 대한 기억이 가득해 마음이 풍요로우면서도 허전하다.
그런데 세월이 가면서 ‘사랑과 희생의 화신’이었던 엄마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1997년 제2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 수상작인 전혜성의 ‘마요네즈’에 한국문학에서 찾아볼 수 없던
새로운 엄마가 등장했다. 두 아이의 엄마인 주인공은 가족의 안위보다 자신의 삶을 즐기는 데
더 관심이 많다. 마요네즈를 샐러드가 아닌 머리카락에 버무리는, 가족의 식탁보다 머릿결이 중요한
신기한 엄마 얘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기적인 엄마’의 등장은 베이비붐세대이거나 X세대인 내 친구들 사이에서도 낯설지 않다.
멋 내느라 바쁜 데다 부엌일에 젬병인 엄마 대신 ‘할머니 밥’을 먹고 자란 친구가 꽤 있다.
그래도 우리 세대는 자나 깨나 자녀 걱정인 엄마가 훨씬 많았는데, 상담 공부를 시작한 이래로
‘상상 초월 엄마’를 많이 접한다.
TV 관찰 예능에 등장하는 ‘이해 불가 엄마’들을 보고 있자면 두려움이 몰려올 지경이다.
선택지가 오로지 ‘전업주부’밖에 없던 시절과 요즘을 비교하지 말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수십 년 전 내가 살았던 도시에는 맞벌이 부부가 많았다. 고주망태 남편 대신 홀로 가계를 꾸린
엄마들도 있었다. 우리 앞집 아줌마는 바다에서 직접 채취한 바지락을 집에서 일일이 다듬어
시장에 내다 파는 3단계 작업을 홀로 감당했다.
술 취한 아저씨가 아줌마를 두들겨 패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우리 집까지 들려오곤 했다.
일자리가 많은 울산의 여러 현장에 나가 작업하고 온 뒷집과 앞집 아줌마도 살림하면서 아이들을 보살폈다.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자녀를 잘 키운 엄마들이 있는가 하면 ‘마요네즈’를 비롯해 개성 강한 엄마들의
계보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여러 상담 사례를 통해 ‘아이에게 상처 주는 엄마도 상처를 잔뜩 받고 자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마음이 아프다.
요즘 다둥이 가정에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는데 아이 키우랴 일하랴, 바쁘고 고달픈 엄마들에게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는 상담 기회도 제공되면 좋겠다. 엄마가 평안해야 아이도 행복하니까.
오래전 시사잡지에 ‘가장 위대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세대’ 1920년대 출생자들 관련 기사를 기고한 적 있다.
그 기사를 쓰면서 참전용사이신 아버지와 그 세대 분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몸소 겪은 후 산업 역군으로 나서 조국 근대화에 앞장서며 자녀 위해 우골탑을
쌓으신 부모님 세대에 경의를 표한다.
‘사랑’의 5월이 가고 ‘호국’의 6월을 맞을 때면 부모님들이 힘들여 일군 나라를 발전시켜 다음 세대에
잘 전수해야 한다는 데까지 생각이 확장된다.
이제 곧 여름이 될 테니 시원하게 보낼 준비도 해야겠다. 엄마는 내가 이 땅에서 즐겁게 살다가
하늘나라에 합류하는 걸 원하실 테니까.
이근미 소설가
출처 :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