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는 알록달록한 입마개를 쓰고 병원에 오는 핏불테리어다. 처음 내원했을 때가 기억난다.
진료가 끝나도 로비에 다른 개들이 있으면 진료실 안에 숨을 만큼 소심했지만, 이름을 부르면
북을 치듯 꼬리를 흔들며 환한 표정을 짓던 친구였다.
워낙 밝은 얼굴이라 투견장에서 구조됐다는 이야기는 의외였다.
싸움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다른 개에게 물리는 '연습용'으로 쓰였다고 한다.
반복된 위협과 공포 속에서 살아남은 동이에게 세상은 여전히 불안한 곳이었을 것이다.
최근 동이는 맹견 기질평가에서 '우수' 판정을 받았다. 서류상으로는 더 이상 '위험한 개'가 아니다.
하지만 그런 평가 결과와는 달리, 거리에서 동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맹견이야! 눈 마주치지 마!" 하고 경계하듯 소리를 지르거나, "저거 영화에서나 보던 그 맹견 아냐?" 하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럴때면 동이는 마치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고개를 떨구고, 꼬리를 다리 사이에 넣은 채 움츠린다.
보호자는 산책 시간과 경로를 최대한 사람들과 겹치지 않게 조정해왔지만, 요즘은 동이가 산책을
나섰다가도 사람과 마주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고 했다.
이런 동이의 모습을 보면, 우리가 '맹견'이라는 말을 얼마나 쉽게, 무심코 사용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분명히 말하자면, 맹견 규제를 반대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효과적인 규제의 필요성에 찬성한다.
현대 동물보호법은 핏불테리어, 도사견, 로트와일러 등 일부 품종을 '법적 맹견'으로 지정하고,
사육허가나 입마개 착용, 기질평가 등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가 과학적인 근거를 갖추고 있는지, 그리고 실제로 안전에 도움이 되고 있는지는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을 물 가능성은 품종보다는, 그 개체가 어떤 보호자와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에 더 크게 달려 있다.
다수 연구에서도 개물림 사고의 주요 원인이 품종이 아니라 보호자의 감독 부족, 사회화 결핍,
방치나 학대 경험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동이의 이야기는 개의 위험성을 단지 품종 하나로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같은 핏불테리어라도, 사람을 두려워하지만 공격 의도가 전혀 없는 개와 실제로 고위험 행동을
보이는 개는 공존한다.
'맹견'이라는 말이 품종에 기대어 공포를 키우는 동안, 동이처럼 갈등을 피하려는 개와 책임감 있는
보호자까지 낙인의 대상이 된다.
위험성을 판단하려면 단순한 품종 분류가 아니라, 개체의 기질과 사육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어떡하냐", "그 개가 사람을 물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 같은 반박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걱정은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만으로 지금의 제도가 효과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실제 개물림 사고는 대부분 보호자의 관리 방식이나 사회화 정도, 생활 환경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결국 모두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건 품종에 따른 일괄적 규제가아니라, 개체의 행동을 잘 이해하고
보호자를 교육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미국 펜실베니아대학에서 개발한 C-BARQ(Canine Behavioral Assessment and
Research Questionnaire)는 보호자가 반려견의 일상 행동을관찰해보고하는방식이다.
낯선 사람에 대한 반응, 불안 수준, 사회성 등 다양한 행동 지표를 계량화할 수 있고, 반복 측정이
가능해서 시간이 지나며 개체의 변화 양상까지 반영할 수 있다.
외형이나 품종이 아니라 실제 행동과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위험성을 평가하는 이런 접근은
우리 모두의 안전을 더 효과적으로 확보하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다.
'어떤 개가 위험한가'만 묻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 본질적인 물음은 '우리는 왜, 어떤 기준으로 개를 위험하다고 판단하는가'다.
이 질문이 바뀌어야 제도의 기준도 바뀌고, 시선도 달라질 수 있다.
진짜 안전은 낙인이 아니라, 이해와 책임 안에서 가능해지지 않을까.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
출처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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