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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詩와 글과 사랑

화양연화(花樣年華)

by maverick8000 2022. 8. 4.

화양연화(花樣年華).

직역하면 '꽃같은 시기'란 뜻이지만 보통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양조위 장만옥 주연의 영화 제목이기도 하지요.

영화는 두 부부의 엇갈린 사랑을 다룹니다.

부부가 서로 상대의 배우자를 원한다는 얘기니까 어쩌면 스와핑에 다름 아닌데

영화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림으로써 보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만듭니다.

우리의 '화양연화'는 과연 언제일까요.

누구는 공부 부담 적던 어린 시절,누구는 대입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던 대학 1-2학년 때,

누구는 한창 사랑에 빠져 있던 결혼 전후를 떠올리겠지요.

대부분 젊은 시절 한때를 생각하겠지만 개중엔 자식들 결혼시키고 홀가분해진 장년시절을

꼽을지도 모릅니다. 젊음이 좋긴 하지만 되돌아가고 싶진 않다는 이들이지요.

저는요? 모르겠습니다.

10대와 20대 모두 사는 게 하도 고달팠던 탓에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 봄날은 있었던가,

내게도 청춘이란 게 있었던가 싶은 까닭입니다.

그러고 보면 저 역시 지금이 가장 행복한 듯도 합니다.

물론 아이들은 아직 자립 전이고, 직장은 언제 그만두게 될 지 모르며,

돌봐야 할 사람은 많고, 미래에 대한 대비도 돼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남에게 빚지지 않고 엄마 말이라면 겉으로라도 깜박 죽는 체하는 착한 아이 둘을

옆에 끼고 살고 있으니 이만하면 행복하다 싶습니다.

물론 아쉬운 것도 많습니다.

중고교 때와 대학 시절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공부를 덜한 것도 후회스럽고,

영어를 못해 창피한 적 많았으면서도 실력을 키우지 못한 것도 안타깝고,

아이들 어릴 때 바쁘다는 이유로 돌봐주지 못한 것도 미안하고,

일찌감치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 것도 부끄럽습니다.

어쩌겠습니까. 모두 지난 일인 것을.

후회하면서 가슴을 쳐봐야 돌이킬 수 없고,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되돌아간다 해도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지금이 제 인생의 화양연화라고 생각하려 애쓰는 이유지요.

안그러고 지난 세월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젖어있다 보면 멀지 않아 또다시

어영부영 보낸 오늘을 후회하게 될 테니까요.

그런 자책감을 줄이려면 지금이라도 저 나름의 화양연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겠지요.

'어제는 역사(history)요, 내일은 미스테리(mistery),

오늘(present)은 선물(present)'이라는 가운데

'인간은 계획을 세우고 신은 비웃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과거에 매이거나 미스테리인 내일에 대한 불안에 시달릴 게 아니라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라는 얘기지요.

'노력은 사람의 몫이요, 결과는 신의 일'이라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을 테지요.

어제도 내일도 아닌 바로 지금이 내 화양연화라고 생각할 때 행복해지고,

사람과 사물 모두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고, 지금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나이는 상관없겠지요. 20대건 40대건 60대건 자신의 일이 있을 게 틀림없으니까요.

 

영화 '화양연화'의 삽입곡입니다. 

Quizas, Quizas, Quizas 냇 킹 콜 (영화 `화양연화`)-201511.mp3
6.43MB

 

<화양연화>

언제였던가
아름답던 시절

눈가에 주름 없고
뱃살도 없던,
세상에 거칠 게 없던,
그러나 외롭던

불안한 미래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원망과 한숨으로 지샜지

화양연화
잃어버린 어제 아닌
바로 오늘
지금 숨쉬고 있는 이 순간.

- 박성희 칼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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