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전, 형편이 어려운 시절 무전취식이나 먹을 것을 훔쳤던 기억을 가진 노인이
피해 가게를 찾아가 사과하거나, 거액을 복지시설에 기부하는 뉴스를 볼 때가 있다.
사람은 참 다양해서 범죄와 비리를 저지르고도 당당한가 하면, 소소한 잘못에도
평생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내 친구는 어린 시절 잠자리와 오래 놀고 싶어 잠자리 몸통에 실을 묶어 날리다가
실을 놓쳐버렸다. 놀다가 금세 날려 줄 생각이었지만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그녀는 지금도 코발트블루를 싫어하는데, 긴 실을 몸통에 매달고 잠자리가 날아가던 하늘이
딱 그 색깔이었기 때문이다. 평생 몸통에 실 꼬리를 달고 살아야 하는 잠자리를 생각하면
그녀는 지금도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한 친구는 ‘팁’에 대해 이야기했다.
베트남의 한 호텔에서 자신을 위한 바닷가 만찬의 연주자에게 팁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수영복 차림이라 미처 지갑을 챙기지 못한 탓이었다. 그는 두 번이나 자신의 테이블에 와서
연주가 좋았는지 묻는 사내의 슬픈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남루했던 사내의 아이들이 어쩌면 그날 저녁을 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금도 미안하다고 했다.
착한 사람들은 타인이 자신에게 잘못한 건 잊고 용서하지만, 본인이 잘못한 건 잊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이들이 기억해야 할 건 하나다.
만약 용서하지 않고 실망과 분노를 담아둔다면 어디에 담겠는가?
결국 자신의 몸과 마음에 담아 두는 것이다.
그러니 용서는 타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위한 것이다.
착한 사람들은 그러므로 본인의 잘못도 꼭 용서해야 한다.
친구에게 내가 만난 애리조나 할머니 얘길 해주었다.
연료가 떨어져 사막에서 오도 가도 못 하던 내게 석유와 물을 기꺼이 나눠주던 할머니가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 하던 내게 말하길, 앞으로 만날 곤란한 여행자에게 자신이 한 대로
베풀면 된다는 것이다.
길 잃은 죄책감이 방향을 옳게 틀면 염치가 되고, 친절이 된다.
내 친구들의 죄책감은 동물 복지를 위한 기부와 후한 팁으로 승화됐다.
출처 : 조선일보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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