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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詩와 글과 사랑

착한 사람 콤플렉스

by maverick8000 2023. 5. 9.

수십년 전, 형편이 어려운 시절 무전취식이나 먹을 것을 훔쳤던 기억을 가진 노인이

피해 가게를 찾아가 사과하거나, 거액을 복지시설에 기부하는 뉴스를 볼 때가 있다.

사람은 참 다양해서 범죄와 비리를 저지르고도 당당한가 하면, 소소한 잘못에도

평생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내 친구는 어린 시절 잠자리와 오래 놀고 싶어 잠자리 몸통에 실을 묶어 날리다가

실을 놓쳐버렸다. 놀다가 금세 날려 줄 생각이었지만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그녀는 지금도 코발트블루를 싫어하는데, 긴 실을 몸통에 매달고 잠자리가 날아가던 하늘이

딱 그 색깔이었기 때문이다. 평생 몸통에 실 꼬리를 달고 살아야 하는 잠자리를 생각하면

그녀는 지금도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한 친구는 ‘팁’에 대해 이야기했다.

베트남의 한 호텔에서 자신을 위한 바닷가 만찬의 연주자에게 팁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수영복 차림이라 미처 지갑을 챙기지 못한 탓이었다. 그는 두 번이나 자신의 테이블에 와서

연주가 좋았는지 묻는 사내의 슬픈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남루했던 사내의 아이들이 어쩌면 그날 저녁을 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금도 미안하다고 했다.

 

착한 사람들은 타인이 자신에게 잘못한 건 잊고 용서하지만, 본인이 잘못한 건 잊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이들이 기억해야 할 건 하나다.

만약 용서하지 않고 실망과 분노를 담아둔다면 어디에 담겠는가?

결국 자신의 몸과 마음에 담아 두는 것이다.

그러니 용서는 타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위한 것이다.

착한 사람들은 그러므로 본인의 잘못도 꼭 용서해야 한다.

 

친구에게 내가 만난 애리조나 할머니 얘길 해주었다.

연료가 떨어져 사막에서 오도 가도 못 하던 내게 석유와 물을 기꺼이 나눠주던 할머니가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 하던 내게 말하길, 앞으로 만날 곤란한 여행자에게 자신이 한 대로

베풀면 된다는 것이다.

길 잃은 죄책감이 방향을 옳게 틀면 염치가 되고, 친절이 된다.

내 친구들의 죄책감은 동물 복지를 위한 기부와 후한 팁으로 승화됐다.

 

출처 : 조선일보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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