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뒷모습으로부터 봄을 알아챈다.
앙상했던 가지 끝에 피어난 꽃을 알아보는 사람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길가 빈터에 꿋꿋하게 피어난 꽃을 알아보는 사람은 바닥을 내려다본다.
함부로 만지지도 꺾지도 않고 가만히 바라보다가 꽃 사진을 찍는 사람들.
작은 예쁨을 알아보는 사람들을 발견할 때 나는 조그맣게 감탄한다.
예뻐라. 사람 꽃이 피었네.
한산한 아침, 벚나무 조르르 심어진 주택가에 산책 나온 아이들을 우연히 따라 걸었다.
서너 살쯤 되었으려나. 여럿이 가느다란 줄 하나를 붙잡고 선생님 발걸음에 맞춰 아장아장 걸었다.
담벼락 아래 서자 선생님이 기념사진을 찍어주었다. “여기 보세요. 활짝 웃어요.”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볕뉘들 일렁이더니 벚꽃 잎이 봄눈처럼 폴폴 날렸다. 꽃을 보는 아이들.
예뻐라. 사람 꽃이 피었네. 내 소맷자락에도 날려온 꽃잎 하나 주머니에 넣고서 조심히 걸었다.
비 오려는지 잔뜩 흐린 오후, 목련이 지고 있었다. 목련 나무 아래에 경비원이 빗자루를 들고 왔다.
꽃잎을 쓸던 그가 잠시 멈춰 서더니 휴대전화를 꺼내 바닥에 떨어진 꽃 사진을 찍었다.
그의 머리 위로 아기 주먹만 한 목련 하나가 불 켠 듯이 아직 피어 있었다.
예뻐라. 사람 꽃이 피었네.
가족들과 공원에 갔다. 색색깔 튤립이 가득 핀 꽃밭에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었다.
우리도 가까이 붙어 셀카를 찍으려는데 지나가던 노인이 “사진 찍어드릴까요?” 웃으며 물었다.
덕분에 다 함께 꽃밭에서 찍은 가족사진이 남았다. “참 보기 좋고 예쁩니다. 행복하세요”라며 덕담을
건네고 가는 노인의 친절이 감사했다.
뒷짐 지고 걸어가는 노인을 무뚝뚝한 아들이 꼭 닮은 모습으로 따라 걷는다.
아이 목말을 태운 힘센 아버지가 그들 곁을 스쳐 지나간다. 맞은편에는 어머니의 휠체어 옆에
무릎 꿇고 앉아 나란히 웃는 늙은 딸이 있고, 그 옆엔 장난스러운 포즈의 어린 남매를 사진 찍어주는
젊은 부모가 있다. 꽃핀 자리마다 사람들이 멈추고 사진 찍고 스치고 지나간다.
무심코 한데 겹쳐 서로의 배경이 되기도 하면서.
예뻐라. 사람 꽃이 만개했다.
어딜 보아도 꽃이 지천이라 뭉클해지는 봄날에 평범한 사람들이 꽃처럼 선량하고 무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비바람에 툴툴 떨어지고 훌훌 휘날려서
모두 져버린다 해도 여기저기 사람 꽃들 활짝 피어서 환하게 웃는다.
살아 있기에 저마다의 모양으로 생동하는 계절에, 흘러가는 어떤 풍경은 울 듯이 아름다워
사진조차 찍을 수 없다.
활짝 웃고 걷고 스치고 지나가고 무심하게 사라지고 다시 살아갈 사람들을,
나는 그저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출처 : 동아일보 [고수리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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