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한 악기_허수경1 불우한 악기 / 허수경 불우한 악기 / 허수경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널 초라한 남녀는 술 취해 비 맞고 섰구나 여자가 남자 팔에 기대 노래하는데 비에 젖은 세간의 노래여 모든 악기는 자신의 불우를 다해 노래하는 것 이곳에서 차를 타면 일금 이천 원으로 당도할 수 있는 왕릉은 있다네 왕릉 어느 한 켠에 그래, 저 초라를 벗은 젖은 알몸들이 김이 무럭무럭 나도록 엉겨붙어 무너지다가 문득 불쌍한 눈으로 서로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 굴곡진 몸의 능선이 마음의 능선이 되어 왕릉 너머 어디 먼데를 먼저 가서 그림처럼 앉아 있지 않겠는가 결국 악기여 모든 노래하는 것들은 불우하고 또 좀 불우해서 불우의 지복을 누릴 터 끝내 희망은 먼 새처럼 꾸벅이며 어디 먼데를 저 먼저 가고 있구나 2023. 7. 3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