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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호랑이를 그리려다

by maverick8000 2023. 12. 27.

 

연말을 보내며 올 한해 세운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 돌아본다. 아무리 결산해봐도 신통한 수확이 없다.

텃밭에 대한 욕심만 앞서서 100평 넘는 밭에 농사를 짓다가 결국 수확은커녕 잡풀만 우거지게 했다.

 

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발걸음을 소홀히 했으니 풀은 무성하고,

고추는 비에 젖고, 오이는 쇄서 늘어져버렸다. 그나마 수확한 빨간 고추는 태양초 만든다고 의욕이 앞서다가

장마에 곰팡이만 잔뜩 피어서 버리게 됐다.

 

농사일뿐만 아니다. 건강에 대한 무리한 목표, 집필에 대한 웅대한 계획, 모두 거대한 목표만 있었지

실현된 것이 많지 않다. 목표는 호랑이(虎)를 그린다는 거대한 꿈이었지만, 실제로는 개(狗) 한마리 겨우 그린

결과를 얻었다. 그야말로 호랑이를 그리려다 결국 개를 그린 화호화구(畵虎畵狗)의 형국이다.

 

연초에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우는 것은 쉽지 않다. 의욕이 앞서서 그렇다.

그러나 지나치게 높은 목표를 정하고 기본을 무시한 채 좋은 결과를 바라다가 목표를 달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다. 차라리 실현할 수 있는 목표를 세워 쉬운 것부터 실현하며 성취감을

느꼈더라면 한해를 보내는 마음이 더욱 뿌듯했을 것이다.

 

‘후한서’에 나오는 마원(馬援)은 광무제 때 명장으로 활약했던 인물이다.

그는 전쟁터에서 두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원대한 목표를 꿈꾸다가 초라한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자신의 현실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꿈과 이상만 높으면 결국 쓸모없는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강력한 훈계다.

 

‘호랑이를 그리려다 완성하지 못하면(畵虎不成·화호불성), 반대로 개와 비슷한 모양이 될 수 있다(反類狗·반류구).

’ 호랑이가 되겠다는 원대한 목표만 좇다가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면 초라한 존재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목표와 이상을 높게 잡으라는 이야기를 잘못 해석하여 작은 것의 실천 없이 큰 것만 추구하다가는 결국

이도 저도 안되는 경우가 많다. 호탕하고 대범한 성격을 추구하다가 작은 성실함을 놓쳐 인간 구실 못하는

사람도 있고, 대박을 꿈꾸다가 쪽박으로 전락하는 사람도 있다.

목표를 높게 잡으라는 것은 작은 실천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 성실함 없이 마음만 들떠서

뜬구름만 잡으며 살아간다면 초라하고 볼품없는 인생이 될 확률이 높다.

작은 것의 성실함과 실천 없이 어떤 위대함도 만날 수 없다.

 

‘작은 것에 성실하라(曲能有誠·곡능유성), 성실하면 저절로 드러나고(誠則形·성즉형),

드러나면 분명해지고(形則著·형즉저), 분명해지면 밝아지고(著則明·저즉명), 밝아지면 감동하고(明則動·명즉동),

감동하면 변하고(動則變·동즉변), 변하면 얻을 것이니(變則化·변즉화), 지극한 성실함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다(至誠能化·지성능화).’

 

‘중용’ 23장에 나오는 목표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힘은 작은 일에 성실해야 한다는 구절이다.

인생을 살면서 호탕하고 큰 꿈을 갖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상과 꿈만 높고 현실의 행동이

그것에 못 미치면 오히려 인생에 큰 상처를 입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발생한다.

 

세상을 살다보면 겉으로 볼 때는 화통하고 통쾌한 것 같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부실할 때가 있다.

반면 남들이 볼 때는 소박하고 너무 신중하다고 생각하지만 꾸준히 기본을 지키는 사람도 있다.

보기에는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성실하고 신중하게 내실을 지니며 살아가는 것이 아름다운 모습이다.

나는 오늘 호랑이를 그리려다 이상한 그림을 그리고 있지는 않은지 추운 겨울, 한해를 보내면서

냉정하게 돌아볼 일이다.

 

 

출처 : 농민신문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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