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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새 물이 연못을 살린다

by maverick8000 2024. 1. 24.

 

손자가 태어나 집에 오자 아버지는 바빴다. 동쪽으로 머리를 두고 잠자는 동침(東枕)을 고집했다. 

아버지는 창과 벽 사이로 스며드는 웃풍이 심하자 머리맡에 둘러칠 머리 병풍(頭屛風)을 만들었다. 

흔히 가리개라 부르는 침병(枕屛)은 대개 두 폭이다. 미뤄뒀던 일이라며 방 귀퉁이에 한동안 밀쳐둔

종이상자를 풀었다. 목공소에 진즉에 주문한 홍송(紅松) 병풍 틀을 만드는 나무가 가득 들어있었다. 

끌로 파고 사포로 문질러 결대로 짜 넣는 데만 며칠 걸렸다. 

아버지는 배접(褙接)은 왜놈들 용어라며 다시 며칠 걸려 두 번에 걸쳐 배첩(褙貼)했다. 

밀가루로 풀을 쑤고 녹말을 완전히 내린 후 말려서 가루로 두었다가 묽게 쑤어 풀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풀로 삼베로 병풍 기둥을 싼 뒤 비단으로 다시 싸 돌쩌귀로 붙여 연결했다.


곁눈으로 지켜만 봐도 정성이 느껴졌다. 며칠 동안 매달리던 아버지가 불렀다. 

종이를 잘라 놓고 기다리던 아버지는 먹을 갈아달라고 했다. 더는 말하지 않고 한 번에 써 내려간 시가

주희(朱熹) 관서유감(觀書有感)’이다. 주희가 책을 읽다 든 생각을 쓴 시다.

작은 사각 연못에는 큰 거울이 펼쳐지니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가 그 안에 일렁인다. 

묻노니 이 연못은 어찌 이리도 맑을까. 발원지에서 쉬지 않고 새 물이 흘러들기 때문이지

[半畝方塘一鑑開 天光雲影共徘徊 問渠那得淸如許 爲有源頭活水來].” 

시는 두 편이다. 저 시는 첫 편이다. 아버지는 행서체로 두 연을 한 폭씩 썼다. 

그래서 병풍은 모두 네 폭이 됐다.

며칠 뒤 아버지는 작품을 배첩한 뒤 외선을 둘러 병풍을 마무리했다. 

붙인 병풍 제목이 고사성어 원두활수(源頭活水)’. 아버지는 내 좌우명이다라고 했다. 주자(朱子)

첫 시 마지막 연에 나오는 글을 축약한 성어다. 수원지에서 맑은 물이 솟아나는 것처럼 사람도 부단하게

지식을 쌓아 새롭게 발전해야 하는 것을 비유한 시다.

반 뙈기 작은 연못 깊은 곳에서 살아있는 맑은 물이 끝없이 솟아 나와 결국 가장 크고 아름다운

것들(하늘빛, 구름 그림자)을 자기 속에 품은 모습이 구도자의 숭고한 경지를 잘 비유했다라고

극찬한 아버지는 끊임없이 솟는 샘에서 흘러온 새 물 때문에 연못이 맑게 유지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도 끊임없이 배움을 통해 자신을 변화발전시켜야 한다라고 설명을 보탰다. 

이어 이 뜻에 감흥을 받은 훗날의 학자들은 자신의 연못을 네모지게 만들고, 시구는 옆에 두고

자주 읽고, 서예가들은 즐겨 쓰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연못에 새 물이 들어오면 내 정신도 맑고 참신하고 넉넉해진다라고 감상한 아버지는 너를 낳고

자그마치 38년이나 기다려 얻은 새 물이 우리집에 들어왔다. 새 물이 연못을 살린다. 

없던 용기도 북돋아 주니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손주가 주는 효과를 톡톡히 봤다라고 손자가

태어난 기쁨을 표현했다. 

이어 아버지는 네 할아버지는 네 큰아버지 아들인 손자가 태어났을 때 침병을 만드셨다. 

그때 병풍 만드는 심부름을 했던 기억을 더듬어 오늘 침병을 살려냈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침병을 펼쳤다 접었다 하면서 당신의 아버지가 첫 손주를 얻었을 때 느꼈을 감흥을

읽어내려고 애쓰며 이제야 내 아버지의 뜻을 이었다라며 의미를 두었다.


아버지는 가둬놓은 물은 반드시 썩는다. 그러면 모두 죽는다. 그걸 살려내는 게 새 물이다라며

연못에 새 물이 들어와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옛 어른들도 그 뜻을 새기기 위해 연못을 만들었다. 

창덕궁 희정당(熙政堂) 옆 하월지(荷月池)도 그렇고, 강릉에 있는 선교장(船橋莊)의 활래정(活來亭)

주희의 저 시에서 따와 뜻을 새겨 만든 거다라고 일러줬다. 이 글을 쓰며 찾아가 보니 건국대

일감호(一鑑湖)는 한강 물이 들어오게 설계돼 있었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새로운 인재가 필요하다면서 그 이유는 새 물이 지닌 잠재력 때문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러나 잠재력을 지닌 새 물도 잘 가꾸어야 손주에게 복이 된다며 교육을 강조했다. 

이어 네 고조부가 손자인 네 조부를 가르친 격대교육(隔代敎育)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늦게 얻은 손주일수록 조부모의 기대감이 아비보다 크다면서 세상이 워낙 많이 달라졌다. 

자칫 큰 기대감이 큰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큰 기대가 옹졸함을 부르기 때문이다라고

주의하라며 포용성을 가지기를 당부했다. 그 또한 손주들에게도 물려줘야 할 소중한 인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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