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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소중한 선물

by maverick8000 2024. 5. 2.

 

 

저희 단지(연립주택)에는 치매에 걸리신 할아버지와 둘이 사시는 할머니가 계십니다.

할아버지는 95세, 할머니는 83세이십니다..

저는 3년여 전에 이곳에 부임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 치매 할아버지로부터

"소장님,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어야지"하는 이야기를 골백번은 들은 것 같아요..

처음엔 '참 실없는 어른이시네' 하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요양보호사가 곁에서

시중드는 모습을 보고, '아~ 어르신 치매 상태가 더 않좋아지셨구나'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2~3주에 한번씩 공동현관 게시판에 제가 좋아하고 계절에 맞는 시(詩)를 출력하여 게시하고 있어요.

이건 초짜 소장일 때부터 쭈욱 그렇게 해오고 있는 습관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에 그 댁 할머니를 길에서 마주친 일이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제 손을 잡고

다짜고짜 "소장님, 고맙습니다" 하시는 겁니다. (순간 약간 당황함)

이어지는 할머니 말씀 요지는...

매 달 소장님이 올려 주는 예쁜 시가 너무 마음에 든다,

그래서 나는 게시물이 바뀔 때마다 펜을 가지고 나와 게시판에서 그 시를 베껴 써서 보관한다,

좋은 시를 게시해 줘서 정말 고맙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도 게시물에 관심을 가져 주시는 할머니에게 감사를 표하고 사무실로 돌아 왔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게시했던 50여 편의 시를 모두 출력했습니다. (물론 컬러 프린터로 이쁘고 고급스럽게.. ㅋㅋ)

출력물을 케이스에 잘 묶어서 짧막한 쪽지와 함께 할머니 댁 우편함에 넣어 드렸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할머니께서 관리사무소로 방문하셨습니다.

마침 제가 없을 때 오셨네요..

할머니는 과자와 빵 등 간식거리를 잔뜩 싸가지고 오셨어요..

"아이구, 이거 들고 오시기도 힘들었겠네.." 하면서 옆을 보니 편지가 한 통 같이 놓여 있었습니다.

 

 

 

 

편지의 내용과 분량을 차치하고, 83세 어르신께서 한지로 만든 편지지에 정성스레 써 내려간 편지를 보노라니

그 정성에 감동하여 울컥했습니다.

내용은 구구절절 시 한편을 써 내려간듯 진심어린 글이었습니다.

 

한지 봉투와 한지 편지지.. 그리고 할머니의 정성까지...

어떤 값진 물건보다 귀한 할머니의 감동 편지는

오래도록 기억되고 간직해야 할 소중한 선물이었습니다..

할머니,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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