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단지(연립주택)에는 치매에 걸리신 할아버지와 둘이 사시는 할머니가 계십니다.
할아버지는 95세, 할머니는 83세이십니다..
저는 3년여 전에 이곳에 부임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 치매 할아버지로부터
"소장님,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어야지"하는 이야기를 골백번은 들은 것 같아요..
처음엔 '참 실없는 어른이시네' 하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요양보호사가 곁에서
시중드는 모습을 보고, '아~ 어르신 치매 상태가 더 않좋아지셨구나'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2~3주에 한번씩 공동현관 게시판에 제가 좋아하고 계절에 맞는 시(詩)를 출력하여 게시하고 있어요.
이건 초짜 소장일 때부터 쭈욱 그렇게 해오고 있는 습관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에 그 댁 할머니를 길에서 마주친 일이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제 손을 잡고
다짜고짜 "소장님, 고맙습니다" 하시는 겁니다. (순간 약간 당황함)
이어지는 할머니 말씀 요지는...
매 달 소장님이 올려 주는 예쁜 시가 너무 마음에 든다,
그래서 나는 게시물이 바뀔 때마다 펜을 가지고 나와 게시판에서 그 시를 베껴 써서 보관한다,
좋은 시를 게시해 줘서 정말 고맙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도 게시물에 관심을 가져 주시는 할머니에게 감사를 표하고 사무실로 돌아 왔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게시했던 50여 편의 시를 모두 출력했습니다. (물론 컬러 프린터로 이쁘고 고급스럽게.. ㅋㅋ)
출력물을 케이스에 잘 묶어서 짧막한 쪽지와 함께 할머니 댁 우편함에 넣어 드렸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할머니께서 관리사무소로 방문하셨습니다.
마침 제가 없을 때 오셨네요..
할머니는 과자와 빵 등 간식거리를 잔뜩 싸가지고 오셨어요..
"아이구, 이거 들고 오시기도 힘들었겠네.." 하면서 옆을 보니 편지가 한 통 같이 놓여 있었습니다.
편지의 내용과 분량을 차치하고, 83세 어르신께서 한지로 만든 편지지에 정성스레 써 내려간 편지를 보노라니
그 정성에 감동하여 울컥했습니다.
내용은 구구절절 시 한편을 써 내려간듯 진심어린 글이었습니다.
한지 봉투와 한지 편지지.. 그리고 할머니의 정성까지...
어떤 값진 물건보다 귀한 할머니의 감동 편지는
오래도록 기억되고 간직해야 할 소중한 선물이었습니다..
할머니,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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