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유선 이어폰을 쓴다. 내가 비주류 유행이면 뭐든 흉내 내는 늙은 힙스터(Hipster)라서는 아니다.
얼마 전부터 유선 이어폰이 다시 유행이라는 기사들이 등장했다. “힙쟁이 필수템”이라는 기사도 있다.
힙쟁이는 힙스터의 한국식 변용이고, 필수템은 필수적인 아이템이라는 소리다.
나이가 들어도 젊은이 용어를 알아야 산다.
유행 때문에 다시 꺼낸 건 아니다. 나는 무선 이어폰을 구매한 적이 없다.
모두가 애플신과 삼성신에게 계몽이라도 받은 듯 무선 이어폰을 구매할 때도 꿋꿋했다.
산만한 성격이다. 뭘 자주 잃어버린다. 모르는 사이 몸에서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기기는 불안해서
쓸 수 없다. 키는 작은데 귓구멍은 또 크다. 참 쓸모없는 신체다.
내가 유선 이어폰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게으름이다. 무선 이어폰을 쓰려면 매번 충전을 해야 한다.
나는 스마트폰 충전도 곧잘 잊어버리는 인간이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배터리도 자주 구입한다.
내 게으름이 지구도 망치고 있는 것이다.
게으른 자에게 충전이라는 행위처럼 귀찮은 건 없다. 요즘은 충전 없이 쓸 수 있는 것이 몇 없다.
모든 게 전자제품이 되어간다. 아파트에 전기차 충전소가 생길 때만 해도 나는 생각했다.
이것이 미래구나. 미래는 아직은 귀찮은 것이었다. 전기차를 산 지인들이 말했다.
“충전이 귀찮아요” 고장도 종종 난다고 했다. 찾아보니 전기차는 모든 범주에서 내연기관차보다
고장이 많단다.
숫제 나는 전자제품 속에 살고 있다. 신축 아파트라 모든 게 전자식이다.
천장에 설치된 빨래 건조대를 올리고 내리는 일도 리모컨으로 해야 한다.
이런 것까지 전자식으로 할 필요는 없잖아 불평하던 찰나, 건조대가 고장 났다.
손도 닿지 않는 지점에서 멈췄다. 수리는 다음 주에나 가능하다. 오랜만에 밀린 빨래도 했다.
널지 못한 빨래는 바닥에서 익어간다.
이 글을 읽는 키 190㎝ 이상 지인들의 긴급한 도움 부탁드린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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