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을 좋아한다. 캐러멜 팝콘을 좋아한다. 극장에서 먹는 캐러멜 팝콘을 좋아한다.
당뇨 주제에 포기할 수가 없다. ‘극장은 팝콘’이란 공식은 누가 만들었을까.
극장 산업에서 팝콘이 영화보다 더 큰 수입원이 되리라는 예측을 한 과체중 미국인일 것이다.
당뇨 합병증으로 사망했을 것이다.
팝콘을 먹을 수 없는 때도 있다. 기자 시사회다. 팝콘을 먹지 않는다는 엄숙한 불문율이 있다.
한번은 과감하게 팝콘을 들고 들어갔다 낭패를 봤다. 기자들은 웃기는 장면에서도 잘 웃질 않는다.
너무 조용해 씹는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녹여 먹었다.
며칠 전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열렸다. 최고의 영화와 영화인을 뽑는 자리다.
올해부터 나도 투표 위원이 됐다. 백인 남성 중심이라 인종 및 성차별 논란에 휩싸인 과거를 쇄신하려
나 같은 변방의 평론가들이 영입됐다. 깍두기다.
올해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은 ‘서브스턴스’의 데미 무어가 받았다.
젊음을 되찾으려는 한물간 배우가 주인공인 호러 영화다.
호러 같은 장르 영화는 시상식 후보에 잘 오르지 못한다. 장르 영화에 주로 출연하는 배우도 그렇다.
그는 45년 경력에서 한 번도 연기상을 받은 적이 없다.
데미 무어는 말했다. “30년 전 한 제작자는 저를 ‘팝콘 여배우’라 불렀습니다.”
연기는 별로고 흥행은 되는 가벼운 배우라는 비하다. 나도 그에게 투표했다. 물론 압도적 연기였다.
더해서 나 역시 팝콘 영화의 팝콘 여배우가 수상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나는 올해 막 쉰이 됐다. 세상 이치를 깨닫는 나이라 지천명이다.
이치는 무슨, 고치에서 깨어나지도 않은 기분이다. 말도 글도 가볍다.
나이가 들면 무거워져야 한다는 강박에 한동안 시달렸다. 데미 무어를 보며 생각을 바꿨다.
모두가 메릴 스트리프가 될 수는 없다. 모두가 바위처럼 살 수는 없다.
세상에는 팝콘 같은 사람도 필요할 것이다. 매번 팝콘 같은 글을 쓰는 자의 변명이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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