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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팝콘 같은 사람

by maverick8000 2025. 1. 9.

 

 

 

팝콘을 좋아한다. 캐러멜 팝콘을 좋아한다. 극장에서 먹는 캐러멜 팝콘을 좋아한다.

당뇨 주제에 포기할 수가 없다. ‘극장은 팝콘’이란 공식은 누가 만들었을까.

극장 산업에서 팝콘이 영화보다 더 큰 수입원이 되리라는 예측을 한 과체중 미국인일 것이다.

당뇨 합병증으로 사망했을 것이다.

 

 

팝콘을 먹을 수 없는 때도 있다. 기자 시사회다. 팝콘을 먹지 않는다는 엄숙한 불문율이 있다.

한번은 과감하게 팝콘을 들고 들어갔다 낭패를 봤다. 기자들은 웃기는 장면에서도 잘 웃질 않는다.

너무 조용해 씹는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녹여 먹었다.

 

며칠 전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열렸다. 최고의 영화와 영화인을 뽑는 자리다.

올해부터 나도 투표 위원이 됐다. 백인 남성 중심이라 인종 및 성차별 논란에 휩싸인 과거를 쇄신하려

나 같은 변방의 평론가들이 영입됐다. 깍두기다.

 

올해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은 ‘서브스턴스’의 데미 무어가 받았다.

젊음을 되찾으려는 한물간 배우가 주인공인 호러 영화다.

호러 같은 장르 영화는 시상식 후보에 잘 오르지 못한다. 장르 영화에 주로 출연하는 배우도 그렇다.

그는 45년 경력에서 한 번도 연기상을 받은 적이 없다.

 

 

데미 무어는 말했다. “30년 전 한 제작자는 저를 ‘팝콘 여배우’라 불렀습니다.”

연기는 별로고 흥행은 되는 가벼운 배우라는 비하다. 나도 그에게 투표했다. 물론 압도적 연기였다.

더해서 나 역시 팝콘 영화의 팝콘 여배우가 수상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나는 올해 막 쉰이 됐다. 세상 이치를 깨닫는 나이라 지천명이다.

이치는 무슨, 고치에서 깨어나지도 않은 기분이다. 말도 글도 가볍다.

나이가 들면 무거워져야 한다는 강박에 한동안 시달렸다. 데미 무어를 보며 생각을 바꿨다.

모두가 메릴 스트리프가 될 수는 없다. 모두가 바위처럼 살 수는 없다.

세상에는 팝콘 같은 사람도 필요할 것이다. 매번 팝콘 같은 글을 쓰는 자의 변명이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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