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홉킨스의 책 ‘내가 죽은 뒤에 네가 해야 할 일들’을 읽다가 ‘더킷 리스트(duck it list)’라는
단어를 봤다.
더킷 리스트는 살면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인데, 저자는 딸에게 싫어하는 일을 나열하고
가장 싫은 두 가지를 당장 중단하라고 말한다.
자신은 ‘매일 체중 재기와 다리털 면도하기’를 삶에서 지웠다고 고백하면서 말이다.
버킷 리스트(bucket list) 가 채우기라면 더킷 리스트는 비우기에 가까운 셈이다.
문득 내가 살면서 가장 하기 싫은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미세 먼지 많은 날 외출하기, 염색하기, 배고픈데 맛집에 줄서기 같은 일도 있지만,
가장 싫은 건 ‘알고 보면 좋은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알고 보면 좋다’는 말을 뒤집으면 ‘모르고 보면 나쁘다’는 뜻인데, 시간을 들여 누군가를
들여다봐야 간신히 이해되는 무신경이나 무례함에 지쳤기 때문이다.
어느 때보다 직접 대면이 적어진 요즘, 좋은 사람 선택하는 법이 아닌 나르시시스트나
소시오패스처럼 ‘피해야 할 사람 거르는 법’이 더 각광받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보고, 듣고, 알아야 할 것이 넘치는 세상이다 보니 시간이 점점 더 비싼 자원이 된 것이다.
물건도 그렇다. 추억 때문에, 언젠가 쓰게 될까 봐 쌓아둔 물건을 애써 비우는 것 역시
그것을 찾느라 허비하는 지금의 시간이 과거나 미래보다 귀하기 때문이다.
도서관이 서재의 확장이라고 생각하면 꼭 필요한 책만 사게 되고, 마트를 우리 집 냉장고의
확장이라 생각하면 1+1이나 세일이라는 이유로 물건을 쟁여두는 습관을 고칠 수 있다.
부동산 공화국인 이 나라의 집에서 사실 가장 비싼 건 물건이 아니라 공간 그 자체다.
안 쓰는 물건에 공간을 빼앗긴다면 얼마나 큰 손해인가.
있는 줄 모르고 같은 물건을 또 사는 낭비는 말할 것도 없다.
정리도 행복처럼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하다.
큰 맘 먹고 하는 대청소보다 틈날 때마다 하는 정리가 자기 효능감을 높이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의 핵심은 절대 버리기가 아니다. 내게 가장 소중한 것 ‘남기기’다.
백영옥 소설가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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