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수염 가위가 있다. 나는 콧수염을 기른다. 정리하려면 작은 가위가 필요하다.
면도 좀 하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남자의 수염은 여자의 컨투어링 메이크업(음영 화장) 같은 것이다.
단점은 가리고 장점은 부각하는 기능이 있다. 한국인도 수염에 좀 너그러워져야 한다.
콧수염 가위는 20년 전 프랑스에서 샀다. 녹슬지도 무뎌지지도 않았다.
나는 프랑스가 문화는 잘하는데 제품은 좀 엉성하게 만든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가위가 편견을 무너뜨렸다. 이래서 작은 물건 하나도 잘 만드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나는 콧수염 가위를 여기저기 들고 다닌다. 쓸모가 많다. 코털이 삐져나와 재채기가 나올 때
코털을 제거하는데도 유용하다. 택시에서 코트 보풀 제거하며 시간 보내기도 좋다.
가끔 ‘에드워드 가위손’이 된 기분이다.
가끔 답답한 순간이 온다. 남의 뒤태를 볼 때다. 모든 코트는 뒷단이 갈라진다. 트임이다.
영어로는 벤트(Vent)다. 한 번 갈라지면 싱글 벤트다. 두 번 갈라지면 더블 벤트다.
코트를 사면 트임이 박음질 되어 있다. 유통 중 옷이 틀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사서 입을 땐 뜯어야 한다. 그래야 옷태가 난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이걸 모른다. 꿋꿋이 박음질 된 코트를 입고 다닌다.
볼 때마다 코털 가위로 뜯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곧 충동을 잠재운다. 타인의 프라이버시다.
가위를 꺼내 들고 “아이고 총각 그거는 뜯어야 해”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지난 세기에 태어난
참견쟁이 아재가 될 것이다.
누구도 참견하지 않는 시대다.
추운 날 “그렇게 입고 다니면 어떡해”라 야단치던 모르는 아주머니들도 다 돌아가셨다.
참견은 오지랖으로 격하됐다. 그래도 우리 삶에는 약간의 참견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이 참견이 얼죽코, 얼어 죽어도 패딩 말고 코트를 입는 멋쟁이들에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시원하게 뜯자. 우리 앞태는 어차피 다 비슷비슷하다. 뒤태라도 예뻐야 한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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